곽병창 '춘향은 울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 춘향, 그녀가 사랑을 버렸다?
한때 간절하던 사랑도, 영원할 것 같은 권력의 위세도 흐르는 시간과 인간의 욕망 앞에서 가차 없이 사라진다. 권력과 연애의 부질없음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시공을 넘어 늘 되풀이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원작의 시간과 공간을 트는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기존의 춘향전의 스토리는 그대로 살리되 장원급제를 위해 몽룡이 한양으로 간 사이 춘향에게 벌어졌음직한 또 다른 일화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춘향은 한양 간 몽룡과의 재회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월매가 극단장으로 있는 유랑극단에서 배우를 하며 지낸다. 권력의 위세를 떨치며 학도가 마을에 부임하고 극단에서 비극적 내용의 공연을 하지 못하게 금한다.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춘향을 불러 슬픈 내용의 공연을 금하면서 또 자신의 춘향을 향한 마음이 받아들여지길 원하지만 춘향은 끝내 청을 거절한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과 하늘 끝에 치달아 있는 권력이지만 시간과 인간의 욕망 앞에서는 어느 힌 순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현대 사회의 단적인 예를 극에 풀어놓고 있는 셈이다
춘향은 몽룡과의 재회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월매 일행과 함께 유랑극단의 배우 노릇을 하며 지낸다. 권력 핵심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있는 학도는 처음 부임하면서 백성들에게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과거를 돌아보지도 말라'고 명한다. 학도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춘향을 불러들여 윽박지르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춘향은 끝내 학도의 청을 거절한다. 한편 가수이자 추억을 파는 베개장수인 북두칠은 수배자의 신분으로 우연히 춘향의 극단에 숨어들어 춘향과 함께 공연하며 지낸다. 춘향이 두 번째 잡혀가는 과정에서 관리들을 때려눕히기도 했던 그는 마침내 춘향을 풀려나게 하려고 자수를 한다. 학도는 이 둘을 모두 가둬두고 춘향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죄수들끼리 진검으로 검술시합을 하게 하는 등 횡포를 부린다. 마침내 펼쳐지는 학도의 생일잔치에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나타나는데...
<춘향은 울지 않는다>는 고전의 재해석, 또는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지배 권력에 대한 비판과 풍자, 민중적 삶의 동력에 대한 애정이 양대 축을 형성한다. 춘향은 몽룡과 이별한 이후에 극단의 광대가 되어 있고, 과거 급제를 하고 어사가 되어 내려온 몽룡은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는 몸이다. 춘향은 자기를 돕다 감옥에 갇힌 극단 동료인 방자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주저 없이 몽룡을 떠나주겠다고 한다. 결국, 기존 지배 권력과 신분 질서의 체제는 공고하게 유지되지만 하층 민중을 대변하는 예인들은 굴종의 삶 속에서도 정조를 팔아 신분 상승을 구걸하지 않으며, 일신의 영달보다는 동지와의 연대를 선택한다. 유랑극단은 아마도 당시의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자유로운 삶의 가능성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