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배소고지 이야기'
1951년 3월 2일 임실군 배소마을의 배소고지에서 있었던 200명의 양민학살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구술기록을
토대로 창작된 작품이다. 그들의 음성을 통해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이야기하며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웃음 속에 눈물이, 눈물 속에 웃음이 있는 진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내가 기다리는 거는.. 사람이 아니고. 시간 같은 거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때.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같은 거.”
2016년 가을밤, 임실 옥정호 근처의 한 매운탕 집의 마당. 금강혼식을 하루 앞둔 입분과 그녀의 소꿉동무이자 매운탕집의 주인인 순희가 마루에 앉아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멀리 내다만 보는 두 사람의 앞에, 어렸을 적 동무였던 소녀가 어린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왜 순희가 혼자 매운탕집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한다. 또, 수다쟁이였던 입분이 말을 잃어버린 지 오래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 세 사람은 나란히 앉아 과거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 사건들을 하나씩 되짚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왜 자신이 여기에 왔는지 알 수 없는 소녀에게 입분이 입을 열어 고백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이 작품은 역사의 전면에서 소외되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여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배소고지의 참혹했던 사건에서 살아남아 팔십이 넘은 순희와 입분에게 어릴 적 동무인 ‘소녀’가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나타나 그 시절, 그곳에서의 삶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들이 했던 다른 선택들과 그것으로 달라져버린 이후의 일상을 그려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순희와 입분, 과거에 머문 소녀의 시간이 교차하면서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공간이 정형화되지 않은 무대에 혼재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위해 9명의 코러스들이 다양한 역할과 움직임을 통해 화성과 멜로디로 표현해 낸다. 역사로부터 외면당했지만 주변에 남아있는 상처를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