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상범, 박상현 '카페 공화국'

clint 2022. 7. 28. 07:00

 

 

 

12층 건물의 스카이라운지 카페 '공화국'에는 오늘도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 모여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로 시간을 보낸다. 신문을 보는 사람,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화장하는 여자, 창밖을 보는 사람.... 돌연 침입자 한 명이 총을 뽑아 들고 사람을 위협하는데, 이때 가까스로 총을 빼앗고 침입자를 제압하는 사람들. 그러나 건물 하부가 붕괴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고 사람들은 바깥세상과 고립되고 만다. 이때부터 '공화국'은 시시각각 완전 붕괴로 치닫는데, 건물 밖의 공화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 퍼레이드, 그리고 쿠데타와 수복 등 일련의 '역사'가 카페 '공화국' 안의 시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며 정신없이 전개되고, 카페 안에 고립되어있는 사람들에겐 어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다. 이제 공포와 위기가 일상화되어버린 '공화국' 안의 사람들, 무의미한 놀이와 게임을 시도해 보려고도 하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진다. 도심의 육교가 무너진다. 아파트 벽은 금이 가고 기둥이 휘청거린다. 무언가 자꾸 무너진다. 우리 주변이 붕괴된다. 무엇 때문일까? 부실공사 때문일까, 관리태만 때문일까? 원인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보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앉고 서고 누워 있는 '이 밑'이 내려앉고 있는 듯한 불안감이다. 이 사회가, 우리 인생이 최후의 붕괴를 앞두고 있는 듯 불안, 초조 막막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미 정치적 해법은 기대할 수 없는 듯 하고 기관총을 들고 혁명을 해야 하는가? 돈이나 왕창 벌어 진탕 쓰며 살아야 하는가? 산으로 들어가 도나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저 농담이나 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가? '카페 공화국'의 창작은 이러한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출구 없는 공간에 갖힌 8명의 인물들. 누구인지, 뭘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익명의 인물들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맞아 보여주는 모습들. 그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희극적 우화로 엮어본 것이다.

이러한 우화 속에서 1990년대 중반의 현시점에서의 현실에 대한 투영은 어느 정도 직설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알레고리의 적정성' 문제. 그래서 우리의 현실과 현대사는 뒤섞이고 왜곡되어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은 '그로데스크 리얼리즘(Grotesque Realism)'의 전형을 보여 준다.

 

 

박상현

이 작품은 신예작가와 연출가인 이상범과 박상현의 공동창작 방식으로 쓰여졌다.

연극 카페공화국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카페 안의 사람들처럼 온갖 사회병리 현상에 무의식적인 중독증세를 보이는 현대인의 무기력함, 또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현실에 애써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 사회의 녹슨 도덕심에 대한 경고다.

공동 작가이며 연출인 박상현은 공동체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으로부터 붕괴될 수밖에 없다이 극은 심각한 무비판, 무반응의 냉소주의에 빠져있는 우리 시대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일종의 패러디로 그린 것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