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운 '화성은 빨갛지 않다'
이것은 언젠가 밀려났던 사람들이, 먼 곳을 향해 각자 도달할 곳을 찾다가 좌초하는 이야기이다. 어쩌다가? 2037년, 화성에 처음 사람이 도착해서 개발기지를 세운지 12년이 지났다. 이에 지속적으로 이주 희망자를 모집하는데, 지원에 자격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주민들의 장기적인 정착 생활을 위해, 사회구성의 다양성까지 재현하려는 것이다. 귀환할 여건이 아직 안 된다면, 귀환하지 않아도 되게 만든다. 그곳엔 닉네임 ‘붉은 눈의 여왕’이란 한 화성인이 있다. 전부터 그러한 화성의 일상 이야기를, 전파에 실어 지구에 들려준다.
중고차 딜러 현구, 사회복지사 선혜, 개인방송인이자 재수생 소영, 한량 정연, 그리고 말없는 노옹 한 사람이 각자의 일상을 살다 화성 이주를 결심한다. 그들은 동의절차를 마치고 한데 모인다. 적응훈련 과정의 일부로써 합숙까지 치러야 하는데, 처음부터 삐걱댄다. 그러다 정연의 제안으로 자신들 만의 규칙을 정한다. 화성공동체가 지구 생활의 장기적인 재현을 목표로 한다면, 지구에서 서로에게 하듯 한 무관심까지 재현해야만, 훈련도 장차 화성에서의 삶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써, 그들은 각자의 과거를 드러내기를 금지하기로 한다. 저마다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할 정도의 과거라면, 모여서 감당하기는 얼마나 버겁겠는가? 몇 개월의 훈련을 거쳐 그들은 모두 선발된다. 로켓 발사 전날 밤에 파티를 연다. 그 자리엔 첫 만남 때와 달리 화기마저 감돈다. 불안한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다잡아주는 가운데 노옹이 뒤늦게 얼굴을 비춘다. 희망자들은 그에게 못다 표현한 동질감을 전하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돌아갈 뿐이다. 파티가 끝나 다들 그대로 잠든 자리에 노옹이 다시 나타난다. 그는 소영이 전부터 읽던 역사 교과서의 페이지를 뒷부분부터 뜯어서 먹는다. 그것을 목격한 소영은 그 인상에 압도당해 달아난다. 그때까지 자지 않고 있던 현구는, 노옹의 과거를 안다는 걸 암시하며 반응을 기다린다. 그러나 여전히 노옹의 뒷모습만 눈으로 좇을 수밖에 없다.
날이 밝자 희망자들은 로켓에 탑승한다. 각자 짐을 풀다가, 노옹이 우주선의 자기 방에 올라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정연은 그 사실을 바깥에 알리려는 소영과 선혜를 만류한다. 발사 시기를 놓치는 데다, 공동생활에 부적격 판정을 받아, 여태 꿈꿔온 화성행이 좌절될 거라고 그들을 설득한다. 그들은 노옹의 죽음을 감춘 채 출발한다. 이틀 후 정연은 동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가는 내내 노옹과 함께하는 것이 꺼림칙하니, 비상탈출용 셔틀 두 개 중 하나에 실어 우주공간에 버리자는 것이다. 선혜는 모호한 찬성의 기색을 띠고, 현구는 침묵만 할 때, 소영은 반대한다. 그들의 냉담함을 비난하고, 노옹을 자기 방에 두겠다고 하며 틀어박힌다. 직후 현구가 반대하고 나서서, 냉장고에 안치하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정연이 투덜거리며 냉장고를 비우러 갈 때, 선혜와 현구는 서로의 입장을 해명한다. 그들은 이제껏 억눌러온, 고통받고 밀려난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고 두려워한다. 그 마음에 떠밀린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나눔으로써 위안받으려 한다. 정연은 숨어서 그 광경을 엿본다. 환멸감에 잔뜩 예민해져 나타난 소영은, 현구와 선혜를 헐뜯고 정연의 열등감을 부추긴다. 정연은 자기연민과 혐오를 공유한 동류로서 소영과 통해보려 한다. 그러나 암시로만 말해지는 불행들과, 최근의 충격으로 다친 소영의 마음은, 뉘게라 할 것 없는 앙갚음만을 꿈꾼다. 정연은 홀로 좌절한다.
화성 도착 며칠 전까지, 희망자들 사이에 감도는 분위기는 황량하기만 하다. 정연은 흐트러진 채 잠으로 시간을 보내고, 소영은 짙은 병색을 띠고 외따로 초조해한다. 선혜는 노옹의 존재가 모두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병들게 했다고 여긴다. 남은 시간 동안 더 안 좋게 번지지 않도록, 현구와 정연이 노옹을 탈출 셔틀에 실으러 간다. 소영은 불현듯 현기증을 느끼며 정신을 잃는다. 선혜는 소영을 간호하다가 그녀가 임신했음을 안다. 현구와 정연은 저마다 부정하니, 배신감과 인간혐오에 선혜는 이성을 잃는다. 남자들이 말다툼할 동안 기계실로 내려가, 분리하면 폭탄이나 다름없는 로켓의 동력전지를 어딘가에 숨기고 온다. 그리고 협박한다. 화성마저 죄의식이 대물림되는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 죄 지은 자는 도착하기 전에 제 발로 내리라고, 그러지 못할 바에 모두 공중분해 되자고 한다. 현구가 스스로 내리려 할 때, 보다 못한 소영이 아이 아버지를 밝힌다. 전에 노옹을 버리느냐 함께하느냐 다퉜던 밤, 소영은 비감에 고조됐었다. 세상에 대한 뒤틀린 원망과 함께, 그 굳은 육신에서 흘러나온 체액을 자기 몸 안에 남겨둔 것이다. 혐의가 풀렸는데도 현구는 내리려 한다. 충격에 겨워, 겨우 소영을 자리에서 떠나보내고 나서 그는 고백한다. 소영의 아이 아버지는 자연사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였다고. 그는 세상에 핍박받은 인간의 대표는커녕, 오래전 몰락하고 잊힌 유력자였으며, 많은 삶을 밀려나게 한 큰 사건의 숨은 책임자였음을 환기시킨다. 그의 죽은 육신은 땅끝에 가게 된 이들의, 나중 삶을 정당화해줄 물증이 될 거라고 부르짖는다. 거칠디 거칠게, 모든 규칙을 깨면서.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공감하지 않는다. 죄를 자처하면서도 미약한 희망을 붙들고 있는 현구를, 선혜는 살인자라고 매도할 뿐이다. 그때 노옹을 옮겨놨던 탈출 셔틀이 발진한다. 소영은 다른 희망자들과의 동반을 거부하고 따로 화성으로 향한 것이다. 알게 된 선혜는 절규한다. 동력전지를 못 찾도록 숨긴 곳이, 노옹을 안치한 가방이었기 때문이다. 민감한 폭탄과도 같은 물건을 싣고, 소영은 무사히 불시착할 수 있을 것인가? 희망자들이 채 책임을 묻고 절망하고 낙관하기도 전에, 동력원을 잃은 로켓이 언제라도 공중분해 될 거라는 경고음이 들려온다. 현구는 남음으로써 죗값을 치르려 한다.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혜도 남음으로써 자기 몫을 짊어지려 한다. 정연은 그들을 비난하면서도, 못내 안타까워하며 혼자 탈출한다. 로켓과 소영의 셔틀은 폭발했다. 정연만 무사히 도착한 화성 기지엔 아무도 없다. 미래의 방문자를 위해 미리 녹음해둔 여왕의 메시지; 화성공동체는 예전에 멸망했다. 그 연유는 몹시도 참담한 것이라, 그에 관한 모든 기록을 삭제했다. 재건하러 온 이들이 우리 행적에 영향 받아, 다른 모습으로 라도 그것이 반복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유일한 화성인이 된 정연은 이제 없는 동행자들을 목 놓아 부른다. 그때 지구에서 교신이 걸려와 이주 희망자들의 안녕을 묻는다. 그리고 땅끝을 선택하지 못한 이들에게 들려줄, 예의 화성의 목소리를 요구한다. 정연은 여왕을 흉내 내며 겨우 운을 떼지만, 이어질 말을 찾지 못하고만 있을 뿐이다.
작가의 글 - 최상운
본래 삶과 고통을 다뤄왔던 예술의 경향은, 특히 오늘날 와서는 어떠한 사회윤리적 기능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만들고 공유하는 행위는, 참여하는 모두를 총체적인 선의의 과정에 합류시킨다. 하지만 그 구현의 양상이 정묘해질수록, 그 토대가 됐던 삶과 고통은, 역류해버린 구현과정에 용해 당할 수도 있다. 오늘날 고통의 예술이 진정 윤리적 기획이 되려 한다면, 예술의 선의가 도리어 자신을 소외시키는 데까지 치닫는, 저 가능성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본 작품은 관련된 대안은커녕 상황조차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버리면서, 혹은 동반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앞을 나아가는가’ 라는 피상적인 주제는, 상기한 집필 의도와 무관하게 전개된다. 둘 사이엔 겉으로 보이지 않는 알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어떤 양식으로도 구현될 수 없는, 모든 작품 밖 삶과 고통의 윤리적 해소에 대해, 수용자 각자만의 되짚음이 일어나기를 필자는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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