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연주 '어느 마을'

clint 2022. 4. 29. 05:31

 

 

 

알립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분께 안타까운 소식을 알립니다. 우리는 당분간 알을 낳지 않습니다알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마을. 마을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일하면, 동물들은 생산하고 번식한다마을 사람들은 달걀을 주식으로 먹으며 살아간다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닭장 안의 닭들이 더 이상 알을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래된 마을 극장에서 마을 회의가 열린다. 닭들은 우울증에 걸렸고, 생산 능력이 사라졌다사람들은 이제 몇 달째 달걀을 먹지 못해 우울하다. 아침에 달걀을 먹지 못하면서 마을의 생산력 또한 급속도로 감소했다. 요리사, 농부, 공장장은 마을의 생산력을 걱정하고 있다. 수의사는 닭들을 치료하기 위해 옆 마을의 심리치료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그런데 수의사가 마을 안에서 발견된 하나의 달걀을 들고 나타난다. 때마침 심리치료사도 도착해 있다그는 수의사의 쌍둥이다. 옆 마을의 언어를 쓰는 심리치료사는 인간이 닭의 부모가 되어 달걀을 직접 부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한편 극장장은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것을 찾아 나선다그때 수의사가 닭을 데리고 다시 나타난다. 심리치료사와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달걀을 부화시키기 위해, “닭의 언어로 그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는 사이 극장장이 불을 켜고, 달걀이 깨져버린다.

배우들은 퇴장한다. 극장장은 빈 극장에 깨진 달걀, 닭 한 마리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애도하려 한다.

연극이 다시 시작된다.

 

 

 

 

작가의 글 - 이연주

사회의 구성원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된다. ‘차별배제에 대한 시선은, 선하게 작동될 때에는 공존을 말하지만, 자신의 문제(생존, 분배 등)와 연결될 때에는 악하게 작동된다. 쓸모가 없기에, 또는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하기에 사라지고,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극단적으로 발현된다면 예술 또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무언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성장, 개발의 논리로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