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양혜정 '무한리필사춘기배송서비스 더 빡스(The BBox)'
clint
2022. 4. 1. 18:06
봄에는 바람이 분다.
노곤한 햇살에 엷은 에메랄드 잎을 피우는 양지 곁. 그들에는 아직 인 눈이 소복하다.
작은 풀벌레들이 깨어나고 새로 맞춘 교복 치마, 수많은 것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그 생명의 약동을 시작한다.
사춘기(思春期)는 생각의 봄, <무한리필사춘기배송서비스 더 빡스(The BBox)>는 봄바람 같은 사춘기가 박스에 담겨
택배로 오는 이야기이다.
중고딩들의 이마위에 매달린 빨간 구슬 같은 여드름, 교복을 줄여 입고 골목에 쭈그리고 꼬나문 담배 연기나 질주하는 오토바이 같은 질풍과 노드의 시간들은 과연 십대만의 것일까? 그리고 한 번 뿐일까? 그리고 그 박스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박스에 담긴 것은 두렵고 설레는 환상이다. 선물이다. 선물은 늘 갑작스럽고 느닷없이 온다.
이 시대는 사춘기라는 박스를 어떻게 대하는가? 대학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지열한 입시경쟁 속에서 미디어가 비춰내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서로를 왕따시키고 폭행하고 비관하여 옥상에 오르고 철 지난 목련꽃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다. 현실이다. 이것이 모두 박스를 잘못 받은 탓인냥 버려진 박스는 얼마나 많은가?
열리지 못한 채 봉인되어 부모의 치맛자락 속에 고단 속에 숨겨지고 반송된 수취인 불명의 박스들은 또 어디서 재발송을 기다릴까? 무한리필배송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