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 '아누크 에메의 기억'

이 작품은 줄거리와 대사 중심의 전통적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두 명의 여배우가 대단히 자유분방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 나가게 된다. 작품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아누크 에메' 라는 실존 여배우의 이미지를 빌어, 인간의 잠재의식에 깃들어 있는 모호하고도 원초적인 그리움과 불안, 꿈같이 허망한 삶에 대한 아찔하면서도 처절한 연민,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고독과 허무를 그리고 있다. 이 연극은 실생활의 재현이나 묘사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일정한 줄거리가 없으며 대사는 일상의 법칙을 따르기보다는 시적인 은유와 상징들로 가득 차 있다. 무대에 펼쳐지는 장치, 의상, 소도구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 역시 시각적으로 구체화 된 일련의 시와 같다.
연극 <아누크 에메의 기억>은 언어의 해체, 연극적 형식의 해체를 통해 흩어진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의 향수로 이끈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영화 <남과 여>의 여주인공 아누크 에메. 그 이름은 그녀를 아는 이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키워드인 동시에, 젊은 관객에게는 낯설지만 그리운 발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은 아누크 에메라는 인물의 개인적 기억과는 무관하다. 아누크 에메는 작가의 감성을 대변하는 주관적인 매체일 뿐이다. 곧 아누크 에메의 기억은 곧 작자와 만든 이들의 주관적 심상과 기억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관객의 호흡도 무대 위의 누군가로부터,
결국은 다시 자신에게로 전이되는 그리움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 연극은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삶의 불안과 정체 역시도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가 흔들리는 기억의 세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무대에서 볼 수가 없습니다. 무대에서 관객이 보게 되는 건 그 남자의 기억과 잠재의식을 모호하면서도 강렬하게 드러내는 두 여배우의 이미지와 대사들입니다. 남자는 간간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그 여배우들 사이를 오가는 형체 없는 하나의 기운일 뿐입니다. 남자는 언젠가 잃어버렸을지도 혹은 만났다, 헤어졌을지도 모를 한 아이를 그리워합니다. 그는 하얀 눈과 얼음이 가득한 북극의 넓은 벌판에서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그는 그 아이와 전적으로, 완벽하게, 원초적으로 재회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아무 곳에서건 그 자리에 서서 눈만 감으면 북극에 가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는 눈을 감고 눈물을 흘리며 북극의 설원을 달려봅니다. 그러나 눈을 뜬 그는 자기 눈이 보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이제 그는 풍선을 타고 하늘 끝까지 날아가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그는 다시 가슴 아파합니다. 아무도 자기 곁에 없다는 사실을 그는 불현듯 깨닫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가 누군지도,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딘지도, 자기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현기증이 나는 자신을, 자신의 기억을 믿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모든 기억이 만들어지기 전의 어떤 영역으로 숨어 들고 싶어 합니다. 그는 바닷가의 방파제에 서서 아주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 자기를 아는 존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는 자신이 물고기이거나 플랑크톤이거나 아니면 조용히 흔들리는 파래의 기억이 만들어낸 망상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그는 여자를 그토록 사랑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여자는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는 한때 자기도 임신해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가 누군지 모릅니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그는 그 사실에 고통받습니다. 그러다 자기의 그 고통은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봅니다. 그는 꿈을 꾸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꿈속에서 자기처럼 고통받는 똑같은 자기를 만납니다. 그는 아주 서서히 바람이 되기로 작정하고는 바람 속으로 뛰어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