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한, 임은혜 '교실이데아3'
이 극은 고1짜리 호기심 많은 남학생 영철과 그의 같은 반 친구들의 성장기이다. 남자아이들은 여학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를 하고, 여자아이들은 친구들끼리 모여 하이틴 로맨스를 몰래 읽으면서 일상적인 성적 호기심을 분출한다. 어느 날 영철의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미경이 아이를 낳는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의 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학교측에서는 교무회의가 소집되고, 소집품 검사와 순결교육이 지시된다. 소집품 검사 때 영철은 읽고 있던 '성의 역사'를 빼앗기고, 철호의 가방에서는 포르노잡지가 발각된다. 근신을 받게 된 영철과 철호, 그리고 철호의 가방에 포르노잡지를 몰래 넣은 상민 3명은 화장실에서 벌로 청소하면서 미경이의 출산과 성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 각각 다른 성적 관점을 나누며 성적 호기심을 키워나 긴다. 영철은 성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걱정하여 찾아온 수영에게 급기야 성급한 행동을 하게 된다. 미경을 좋아하던 철호는 학교에서의 퇴학 이후 미경의 행방이 걱정되어 미경이가 늘 지나다니던 곳으로 찾아가 미경을 만난다. 갑작스런 아이의 출산과 다시는 학교와 순수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혼란으로 방황하던 미경은 철호의 걱정과 위로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하다 싸움까지 벌이게 된다. 어릴 적 엄마에 대한 일로 성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철호와 미경은 각자의 상처를 드러내며 싸우다가 미경이 격정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사라져버리고 철호는 그런 미경을 바라보다 학교로 돌아온다. 학교에서는 시급하게 아이들을 위한 순결교육이 실시된다. 무조건적인 순결만을 아름답게 여기는 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철과 수영과 철호는 성에 관한 진정한 진리를 가르쳐줄 것을 호소한다. 이 일로 인해 영철의 같은 반 친구들은 기합받게 된다. 기합받고 자신들의 들판으로 달려나온 영철과 수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진리를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마음과 자유의지로 찾기로 마음을 모으고 들판에서 성의 아름다움을 확인한다.
포르노, 하이틴로맨스, 성인 잡지, 애로 비디오, 단란주점 아이들, 가출해서 자취하는 아이들, 낙태경험이 2번 있는 아이가 또다시 임신했다고 낙태비 빌리러 왔었다는 아이,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지 못하고 반강제로 섹스를 했다는 수치심으로 자살한 아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화장실 변기에 버려서 구속된 아이...... 그리고, [성의 역사의 억압과 성의 권력구조], [향기]에서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신의 매력과 남여의 개념, 성 억압의 결과가 문화를 만든다는 프로이드와 마르쿠제의 개념들..... 너무나 많은, 너무나 다른 개념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고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궁금증처럼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진리를 놓고 싸우고 있다. 누가 과연 승리할지, 어느 편이 승리의 깃발을 꽂을지!!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게 될 때 이러한 논리들은 마구 헷갈리게 된다. 세계성폭력 사건 발생률 3대 강국의 하나인 대한민국의 땅에서 성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온몸을 다 도려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청소년의 성문제로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다보니 앞이 깜깜하다. 교육문제가 그러하듯이 모든 원인의 화살이 또다시 기성세대에게 돌아가게 된다. 1차 성징 때는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 알아야 할 시기이고, 2차 성징 때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알아나가야 할 것이며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를 맺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1차 성징 때부터 이미 숨기는 법을 감추는 법을 교육받고 그것이 대단한 진리인 듯 알며 2, 3차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는, 다음 세대에게 또다시 그 비밀의 원칙은 더욱 확고한 진리로 여겨져 굳어져 내려오고 있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성적호기심을 포함한)은 본능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본능을 얄팍한 논리로 숨기는 것은 더 큰 상처를 낳을 뿐이다. 그 상처는 또 다른 무지를 낳고, 그 무지는 편견과 수치심과 위선 덩어리들을 낳게 되어 혼란 속으 로 빠질 것이다. 아이들은 소통(Communication)하기를 바라고 있다. 전화방, 삐삐, 핸드폰, 편지, 음악... 무수한 많은 소통수단이 그들의 문화를 에워싸고 있다. 성도 그러한 차원에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물론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출발점은 될 듯싶다. 그리하여 끊어진 사제지 간의 소통의 끈을 복구시키고, 부모자식 간의 소통도 원활히 만들어서 그들이 올곧게 사회를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준비되어 있다. 그들은 앎의 의지가 대단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