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김율아 '예화전'
시대를 앞서나간 여성 국극 왕자, 임예화.
명창인 아버지와 권번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예화는
처음 본 연극에 매료되어 배우를 꿈꾸게 된다.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권번을 뛰쳐나온 예화,
극장으로 가던 중 길을 잃어버린 예화는 때마침 전쟁으로 헤어진 친구 '건'을 발견하고,
그를 따라가다 운명처럼 동양극장에 도착하는데....
계집애가 어쩌고 하는 잔소리도 지겹고 에라 모르겠다,
남장까지 하니 두려울 것이 하나 없다.
임춘앵(林春鶯: 1923~1975)은 한국의 여류 판소리 국악인으로, 여성 국극의 창단 멤버이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임춘앵의 본명은 임종례이며, 前 여성 국악 동지사 고문이었던 임유앵의 여동생이다. '여성 국극'은 그 안에 나오는 남자 캐릭터도 모두 여배우들이 맡아 연기하는 극으로, 여성 단원들로만 이뤄진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비슷하다. 중국의 '경극'에선 남자 배우들이 여성 캐릭터도 연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일본 '다카라즈카'나 한국의 '여성국극'에선 여성들이 남성 캐릭터도 연기하는 것이다. 어려서 판소리를 배운 뒤 창극단에 들어가 여러 군데에서 지방 순회공연을 경험한 임춘앵은 광복 후 서울로 올라와 1948년 박녹주, 김소희, 조농옥, 박귀희 등과 함께 '여성 국악 동호회'를 조직하였다.
고전 <춘향전>을 각색한 창극 <옥중화>에서 임춘앵은 남자 주인공인 '이도령(이몽룡)' 역으로 열연하기도 했다. 1949년엔 창극 <햇님 달님>에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활발하게 지방 공연을 갖게 되었고 '여성 국극(女性 國劇)'은 탄생 1년 만에 한국 창극계를 이끌어 가게 된다. 임춘앵은 1961년 언니인 임유앵과 더불어 '여성 국악 동지사'를 결성하였고, 당시 청주에서 공연한 창극 <공주궁의 비밀>이 큰 호평을 받았다. 그녀는 1948년부터 20여 년간 <옥중화(춘향전)> <햇님 달님> <무영탑> <견우와 직녀> <청실홍실> <낙화유정> 등 무수한 대작을 발표하였다. 극 안에서 왕자나 귀공자 역을 주로 맡았던 임춘앵은 당시의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누렸던 '인기 스타'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이후 주요 단원들이 별도의 햇님 국극단을 조직하였고, 이후 여성 국악단, 여성 국극 협회, 여성 국악 동우회, 국극사 등 많은 여성 국극 단체가 조직됨으로써 '여성 국극'의 붐을 일으켰다. 여성 국극단에서 공연된 작품들은 대개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나 야사, 전설 등을 재구성한 것으로 '권선징악/인과응보/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등을 다룬 낭만적인 작품이 많았다. <목동과 공주> <무영탑> <공주궁의 비밀> <낙화유정> <선화공주> 등은 '여성 국극단'의 인기 작품이었다.
1960년대 접어들어선 영화 산업의 흥행과 텔레비전(TV)의 보급으로 국극이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여성 국극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임춘앵은 1968년 은퇴하였고, 그 후 '임춘앵 무용 연구소'를 설립한 뒤 여러 국극 배우들을 양성하면서 창극의 발전과 국악 대중화에 힘썼다. '여성 국극'은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재기의 움직임이 있었으며, 1980년대 말부터 임춘앵의 조카인 김진진과 조금앵, 김경수 등이 중심이 되어 전통 국극의 부활에 힘써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작가의 글 - 이어진
처음 율아와 함께 예화의 이름을 만들면서 한자 하나하나 따져가며 뜻을 엮던 때가 기억납니다. <예화전>에는 무엇 하나 우리의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게 없어요. 물론 모든 작품이 마찬가지겠지만, 우리에게 <예화전>은 처음 공동작업을 한 만큼 더더욱 정성 들여서 쓴 대본입니다. 예화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故임춘앵 님의 일대기를 보고 반해 시작한 <예화전>은 예화라는 인물 그 자체가 주제이자 우리의 자화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예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서양의 뮤지컬과 우리의 창극을 잘 섞고 싶기도 했지요. 그렇다 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예화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예화전〉은 앞으로도 더 발전할 테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우리 작품이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글 - 김율아
문학 창작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사실 대본을 쓸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관련지식이 문외한에 가까워 제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저에게 여진언니가 고맙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고, 처음엔 고민도 했었지만 여진언니가 보여준 임춘앵 씨의 이야기를 읽고 나선 '이거다! 이건 꼭 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 삶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그로부터 탄생한 예화를 통해서라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며 중요한 것 한 가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진 언니는 예화를 자화상이라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저에게 예화는 좋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화가 쓰러지지 않기를 응원하며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갈 길이 먼 작품이지만 독자분들도 저처럼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면 지금은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