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영 '꽃잎 져서 피'
수잔의 할머니는 동양척식회사(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에 다니는 고바야시라는 일인을 만나 하나꼬를 낳는다. 해방과 되면서 고바야시는 할머니를 남겨둔 채 일본으로 돌아가 버린다. 할머니는 조국에 남아 혼혈이라는 사람들의 냉대를 받으면서 상실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 동두천의 미군기지 부근의 유흥가에서 몸을 판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커온 수잔의 어머니 하나꼬는 자신에 희망과는 달리 어느샌가 그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녀의 화장을 따라하고 절망감을 이어받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자신도 미군에게 몸을 내맡기게 되는 처지에 이른다. 여기에서 하나꼬의 딸, 수잔이 태어난다. 백인의 피를 물려받은 수잔은 할머니, 어머니와는 생김새부터 혼혈의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인물이다. 이 수잔 또한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픔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겪게 된다. 할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고 나이든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군기지의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몸을 판다. 마약을 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면서 여러 남자를 거치며 몸과 마음이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성매매의 상대로 아버지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 어머니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지만 수잔과 그녀의 아버지 로버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인륜적인 성관계를 갖는다. 아버지와의 결합에서 아이를 배게 된 수잔에게 어머니는 낙태할 것을 권유한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까지 하는 할머니는 자신은 일종의 유기세대(遺棄世代)로서 될 수만 있다면 수잔을 이용, 어디론지 달아나 의식의 면죄부를 얻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수잔의 정신세계는 강대국 우월주의에 젖어, 노랑머리를 가진 혼혈인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수잔을 통하여 품었던 유일한 희망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극도의 허탈감에 빠지고, 수잔의 어머니는 수잔이 밴 애를 없애기 위해 수잔을 방안에 가둔 뒤 독초 다발에 불을 지핀다.
오태영의 이 작품은 일본의 식민체제가 끝난 직후 직접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의해 또다시 군사지원체제에 둘러쌓인 한국의 단편적인 모습을 동두천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 담아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