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현 '화절령'
‘92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화절령은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 본 듯하고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떠나버린 폐광 직전에 탄광에서 죽음의 가루를 마시며 탄을 캐며 살아가는
광부와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고 살아온 젊은 작부...
그들은 어둠과도 같은 절망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작품이다.
심사평 - 이근삼 유민영
예년에 비해 극작가 지망생들의 의욕은 다소 줄어들었으나 수준마저 저하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시세에 편승한 의식과잉의 비문학적인 요소가 급격히 사라진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 가운데서 최종까지 거론된 작품은 『늪』(김수), 『색안경』(신상근), 『구씨의 사고』(홍현수), 『화절령』(유동현) 등 4편이었다. 두 편이 한 시대의 사회윤리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나머지 두 편은 삶의 본질을 탐구한 것이었다. 가령 근자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정파괴범 문제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명한 『늪』이라든가, 한때 정치· 교육문제였던 전교조를 교육현장에서 증언한 『색안경』이 바로 그러한 사회문제극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두 작품 모두 상식의 차원에 머물렀을 뿐 작품에 이르지는 못했다. 결국 수준이 비슷한 『구씨의 사고』와 『화절령』이 겨루게 되었다. 고장 난 신호등 앞에서 서성이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알레고리와 상징기법으로 묘사한 『구씨의 사고』는 구성도 탄탄하고 지적인 언어가 돋보였으나 모작의 냄새 때문에 제외되었다. 즉 인물선정이라든가 대사, 그리고 상황 등이 부조리 작가 베케트의 특정작품을 연상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은 자연스럽게 흠이 가장 적은 『화절령』을 가작으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몰락해 가는 탄광촌을 무대로 그 속에서의 고통스런 삶을 따뜻한 시각으로 묘사한 『화절령』은 결구 처리를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성격 창조, 구성, 절제된 언어 등이 돋보였고 특히 작가의 긍정적 세계관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마지막에 와서 주요인물인 「상도」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아쉽게 가작에 머무른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기대를 걸어도 좋을 만큼 역량이 있었다.
당선소감 - 유동현
겨울이다. 강풍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포근하기만한 계절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길모퉁이의 군고구마 장사 앞에서 호호거리는 연인들의 사랑이 구수하게 영그는 계절이다. 포근하고, 행복하고, 정말 따뜻한 계절이다. GNP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덩달아 물가가 치솟아도 외제가 없어서 아우성치는 선진국이 되었으며 유엔에도 가입했고, 비핵화에도 협의했다. 정말 개국 이래 최대의 태평성대다. 무엇이 더 부러우랴. 그런데 자꾸만 가슴 한 구석이 시리다. 가슴으로 땅을 기며 생명을 영위하는 거리의 천사들. 껌팔이 아이들. 연탄 한 장 달랑 사들고 언덕을 기어올라야 하는 달동네. 재개발 구호에 거리로 내쫓긴 철거민. 근로자가 사라진 공장. 유흥가의 소녀들. 여의도광장을 질주했던 광인. 폐광으로 폐촌이 되어가는 광산촌· 어촌· 농촌, 그리고 화절령. 아직도 존재하며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이 공존의 그늘! 이국의 생활에 정신없이 휘말리다 한편으론 서운하면서도 반갑게 접한 고국의 소식인 희곡 입선!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하나, 공존의 그늘이 기억 속으로 굳세게 자리잡았다는 것뿐.
◇약력:▲1958년 전북 정읍출생 ▲1990년 전교학 문예희곡 『꺾이는 갈대는 날을 세운다』가 당선 ▲1991년 서울예전 극작과 졸업 ▲현재 일본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