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신윤주 '어린잎은 나란히'

clint 2022. 1. 21. 11:06

 

 

 

진의가 집을 비운 그 여름. 8년 만에 친언니 진의의 집을 찾은 초영은 진의의 집 앞에서 연두와 마주친다. 탐색 끝에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된 초영과 연두는 둘만의 약속을 하고, 초영은 오늘 낮에 본 진의의 이상함을 알아차린다. 완전한 밤이 오기 전, 둘은 나란히 이름 모를 씨앗을 심게되는데... 마침내 무엇이 자라게 될까?

 

다양한 가정의 형태 중에서도 위탁가정과 그 가정을 둘러싼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느림과 여백, 절제의 미학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을 받았다.

 

 

 

 

연극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은 이 집의 주인이 아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초영으로,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변화하게 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더위에 기진맥진해진 것처럼 보이는 초영이 에어컨을 켜고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방안에서 진의가 나온다. 초영은 언니인 진의가 여행을 떠나는 동안 집을 맡아주기 위해 이 집에 왔고, 진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 떠나지 않아 집에서 마주쳤다. 진의는 남편과 스무 살이 된 딸을 두고 있다. 연두라는 4살 아이를 위탁해 12살이 될 때까지 키운 후 위탁 기간이 종료되어 아이를 친엄마에게 보낸 지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8년 만에 언니의 집에 온 초영은 언니가 아이에게 그만 미련을 버리기를 바란다. 연극은 집안과 식물, 아이에게 성심을 다하며 돌보는 진의, 그리고 진의를 오랜만에 만난 만큼 시간적,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초영을 대치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진의는 연두가 돌아간 이후에도 이따금씩 놀러오기 때문에 연두의 물건을 버리지 않을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초영은 그런 진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 경미를 집으로 불러 어린이 책 전집과 장난감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나눠주어, 그 광경을 보는 진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영이 진의의 집에 드나들며 만나게 되는, 이해할 수 없는 또 한 명의 돌보는 사람은 옆집에 사는 금란 할머니이다. 처음 진의의 집에 올 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할머니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을 초영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언니가 친자매여도 많이 닮지 않아 얼굴을 헷갈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당황한 초영은 대꾸도 않고 집으로 올라왔다. 이렇듯 마음을 내어주는 것에 경직되어 있던 초영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화한다.

 

 

 

 

자기 생각대로 아이의 흔적을 정리하려 할 만큼 진의에게 공감하지 못하던 초영은, 진의 엄마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연두를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지만 곁을 잘 내주지 않는다. 한여름 날씨에 아이를 집안에 들여보내려 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언니에게 연락을 취해볼 뿐이다. 무대 위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 대화한다. 그러다 연두가 먼저,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물으며 초영에게로 한 걸음 옮긴다. 관계를 형성하려는 욕구를 먼저 내보이며 질문하는 연두는 그의 이름에서 연상되듯 어린잎의 현신이다.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만큼 싱싱한 기운이다. 뿐만 아니라 초영과 집에 들어온 연두는 진의엄마 집에서 나는 포근한 냄새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물건들이 없어진 것을 보자 이모가 또 치울 것 같다며 남은 물건을 챙겨 가려 한다. 그만큼 연두는 모든 걸 생생히 느끼고 기억하는 존재이고, 상처받을 수 있으며 자기를 지키기 위해 행동할 줄 아는 인격체다. 초영은 연두의 살아있음을 여실히 느끼며 연두에게 조금씩 곁을 내준다. 함께 밥을 먹은 두 사람은 베란다의 식물을 바라보며 탁자에 나란히 앉아있다. 연두는 초영에게 8년 전에 봤던 진의엄마의 모습을 물어보고, 초영은 진의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해내 말해준다. 이로써 두 사람은 진의에 대한 애정과 기억으로 연결된다. 연극에서 진의의 집 탁자에 나란히 앉은 장면은 두 번 반복된다. 초반부에서 초영이 진의의 집에 방문해 진의와 나란히 앉은 장면, 그리고 후반부에서 진의가 없는 집에 방문한 연두와 초영이 나란히 앉은 장면이다. 이는 돌보는 사람인 진의가 타인이 누구이든 평등한 태도로 존중하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위탁되어 키워진 연두도 동생 초영도 진의를 그리워하는 것일 테다. 연두와 초영은 나란히 서서 금란 할머니에게서 받은 여러 종류의 씨앗을 화분에 함께 심는다. 할머니가 모두 섞어버려서, 오히려 어떤 꽃을 피울지 기대가 되는 씨앗들을 나란히 심는다. 연두는 초영에게 새싹이 나면 그 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며 또 한 번 싱그럽게 제안한다. 아파트 복도에서 멀리 거리를 두고 서 있었던 연두와 초영은 이제 어깨동무를 할 만큼 가까워져 함께 집을 나선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생긴다. 초영이 진의의 집에서 만난 진의는 8년 전 모습을 하고 있으며 경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연극은 후반부에 연두의 입을 빌려 초영이 진의를 많이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많이 보고 싶을 땐 꿈속에서 만나게 된다며 해당 장면을 현실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둔다. 이 아리송한 느낌은 단단한 현실의 논리에 이야기를 가두지 않고 이야기의 틈새를 넓힘으로써 인물들에 대한 질문을 품도록 만든다. 초영과 진의 사이에 8년간 왕래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초영은 진의와 어린 시절 어떤 자매로 지내왔을까? 이외에도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인물, 즉 타인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하며 가까워지는 것은 연극이 담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또한 금란 할머니와 초영이 만나는 장면에서는, 연극은 이러한 수수께끼를 굳이 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금란은 진의와 닮아 보이는 초영에게 엘리베이터에서도, 아파트 복도에서도 진의인 줄 알고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처음에 초영은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치지만, 두 번째에 만났을 때에는 굳이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대답한다. 그런 초영에게 금란이 안겨준 것은 씨앗 무더기와 흙이 담긴 봉지다. 이 장면을 통해 연극은 어떤 씨앗이 어떤 꽃을 피우게 될는지 미리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씨앗들을 가꾸고 살피는 마음이고, 이웃에게 선물을 건네는 정다움이고, 격의 없이 먼저 말을 건네는 용기라고 말한다. 혈연관계가 어떻든 출신이 어떻든 다양한 가족 형태가 가능하며, 그 속에서 내 주변의 생명을 돌보고 서로 연대하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