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정수 '발걸음 소리'

clint 2022. 1. 15. 07:05

 

 

2022 한국극작가협회 신춘문예 당선작

 

 

소리는 새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청각을 자극하는 감각이 멋대로 이미지를 만들어 사람을 감상에 빠뜨렸다.

아파트 층간소음을 소재로 한 단막극 <발걸음 소리>는 그런 미묘한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귀가 예민한 80대 어머니를 혼자 모시고 사는 40대 여성 주인공,

그녀는 소음은 피해 새 아파트로 이사 있지만, 여기서도 옥상을 들락리거나

10대 소녀 때문에 어머니에게 시달림을 당한다.

주인공은 어머니를 위해 오늘도 행동에 나서지만

그녀의 행동은 방아쇠가 돼 참혹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심사평 : 심사위원 국민성, 김민정, 배진아, 양수근, 차근호

 

올해 응모작은 황혼이혼, 저출산 시대, 대형 참사나 각종 강력 범죄,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사회문제, 전염병, 미래과학을 비롯하여 삶과 존재에 대한 통찰에 이르기까지 사회문제와 인간 본질 탐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었다. 134편 중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고양이가 운다>, <발걸음 소리>, <베베 복권>, <생존 노리(生存 老羸)>, <아가미>, <안개꽃 한 아름을>, <유토피아>, <통조림>, <파리지옥>, <황혼통>까지 총 10편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의미가 있고 완성도가 있었으며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는 수작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단막극으로서 묘미를 보다 잘 살린 작품, 연극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작품, 인물 설정과 극적 구성이 우수한 작품, 현 시대를 담아낸 작품의 시의성, 작가적 소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그 결과 <고양이가 운다>, <발걸음 소리>, <유토피아> 세 편의 단막극으로 압축하였다.

<고양이가 운다>잃어버림잊어버림그리고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극은 주인공에게 벌어졌던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이것이 주변 인물들의 상황, 주인공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배경, 고양이 울음소리와도 중첩되며 주제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적 기억을 개인의 사연으로 풀어내면서 직접적이지 않게 세련된 형태로 구성한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인물들이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이 다소 잔잔한 사연들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극은 무대에서 언제나 현재화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희곡으로서 읽었을 때보다 무대화되었을 때 아쉬운 점들이 나타날 우려가 있었다<유토피아>는 계급의 양극화 양상을 단막극으로서 잘 표현한 작품이다. 뚜렷한 캐릭터 설정과 함께 극중 에피소드들이 희극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극적 재미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형태보다는 작가적 시각이 가미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더라면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인상을 너머서 극의 깊이까지 더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발걸음 소리>는 층간 소음 문제를 신선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세대원이 옥상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시달리자 이를 항의했고, 바로 그 다음 날 소음을 일으키던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소음을 일으키는 청소년기의 세대, 소음에 시달리는 노년층의 세대, 이 갈등을 중재하는 중장년층의 세대가 등장한다. 직접적인 소음을 일으킨 502호의 학생과 피해를 호소한 1501호의 어머니는 직접 소통하지 않고 1501호의 중장년층에 속한 딸이 이 문제를 해결하러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소음은 지속되며 막이 내린다. 이러한 결말은 층간 소음이라는 사회문제를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작가적 시각이 가미된 작품으로서 완성시켰다. 표면적인 문제는 층간소음이지만 나아가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세대의 역할과 방법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극이 진행되면서 각 인물이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들이 담백하게 녹아들어 있으며 대사의 힘이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이에 당선작으로 <발걸음 소리>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당선된 작가에게는 축하를 전하며 앞으로 한국 희곡과 연극계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집필하는 데 힘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작가의 출발을 응원하며 다시 한 번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김정수

당선소감

연극은 제게 가깝고도 먼 세계였습니다. 돌아보면 삶에서 그게 가까이 있던 순간들은 참 많았습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흉내 내었던 아기 예수를 그리던 공연, 소풍에 가서 뽐내던 각색 장기자랑, 국어 시험에 등장하던 의미심장한 희곡의 지문들, 그리고 티브이나 영화 속에서 보았던 늙은 배우의 인상적인 독백 장면들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게 그러하듯, 제게도 연극은 구경하기 쉽지 않았던, 왠지 제 삶과는 멀리 떨어진 예술이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늦은 나이, 어느 날 문득 희곡이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마치 그것은 호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틈틈이 꺼내 보는 인형 놀이 같았습니다. 손바닥만한 상자 위에 내 주변의 사람들을 놓아두고,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대꾸해 보는 은밀한 흉내 놀이 말이지요. 연극의 무대란 좁디좁았고, 마치 처음 갖게 된 한 칸 자취방같이 조촐해서 더 매력이 있었습니다. 도무지 견적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작은 직사각형 안에 빼곡히 가구를 배치해 보는 재미가 있는 골방이랄까요. 그리고 방 안에서 가족을 그려보고 친구를 말하다 보면, 결국은 모두가 나임을 깨닫는 곳이기도 했지요. 이 매력적인 공간에 서툴게 발을 내디딘 저를 과분한 환영 인사로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차수자 (본명 김정수)

1982년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