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살세도 '돈데 보이'
멕시코와 국경 지대를 이루고 있는 미국, 국경을 몰래 넘나드는 멕시코 불법 이민들 때문에 경비는 나날이 삼엄해지지만,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난민들의 불법 이주는 끊이지 않는다. 불법 브로커를 통해 미국으로 가는 기차표를 얻은 19명은 희망을 안고 기차에 오른다. 100불이라는 돈으로 이들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배팅한 것이다. 이들은 기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거나 게임을 하며 공포스럽고 불투명한 여정을 견뎌낸다. 그러나 지난한 여정이 계속될수록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기차는 진로를 이탈하고 멈추고 만다. 이어지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이들은 미국 땅에 닿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광기에 휩싸이고, 분노에 치를 띤다. 중간 브로커인 모스코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키는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여 이때를 회고한다. 남아있는 자들은 떠난 이들을 그리워하며 세월의 허무하게 다가오는 변화를 맞이한다....
이 작품에는 보편적인 감정을 지닌 보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보다 나은 희망적인 삶을 위해 기차 칸에 숨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오직 한 명만 살아남을 뿐이다. 어머니들은 결코 도착하지 못할 자식들의 편지를 기다린다. 우고의 비극은 멕시코의 불법 이민자들이 겪는 슬픈 현실이다. 미국에 가면 뭔가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 기차가 멈췄을 때의 불안감, 서서히 죽어가면서 겪은 극한의 공포, 자식과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어머니와 아내와 딸의 슬픔과 기대, 죽음,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고발 등이 이 작품의 비극성의 근원이다. 새로운 삶을 찾아 위험을 무릅쓰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 작품은 밀입국하려다 기차 안에서 질식해서 죽은 사람들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끝나는 희망을 찾아 싸우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작품의 원제는 '가객들의 여행(El viaje de los cantores)'으로, 1987년에 18명의 멕시코 사람들이 불법으로 미국으로 밀입국하려고 밖에서 잠긴 기차 칸 안에 숨어있다가 결국 질식해서 죽었던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8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1989년 스페인어로 쓰인 극작품들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세계적인 극문학상인 티르소 데 몰리나 상을 수상했고, 현재까지 중남미, 미국,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을 정도로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10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6월 29일부터 7월 8일까지의 여러 사건(불법이민 브로커와의 만남, 밀입국자들의 출발, 남자들이 떠난 마을에 남는 여인들, 기차 고장, 갇힌 기차 칸에서의 걱정과 두려움, 유일한 생존자에 대한 미국경찰의 심문, 장례식)을 행동, 낭송, 합창, 웅변, 독백 등으로 구성하여 시간 순으로 전개하고 있다.
불법 이민을 시도하던 멕시코 난민들이 기차 화물칸에서 질식사한 비극적 실화를 소재로 멕시코의 저명한 극작가 우고 살세도가 희곡을 썼다. 원제는 '가객들의 여행(El viaje de los cantors)'. 제목이 쉽게 인지되지 않겠다는 판단 때문인지 멕시코계 미국인 티니 이니호사 (Tish Hinojosa)가 1989년에 발표한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로 바꿨다.
관극평
남자들은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기차를 탄다. '사다리' 모양의 오브제를 사용했다. 사다리는 바닥에 놓아 철로가 되기도 하고, 세워 놓아 계단이 되기도 하며, 옆구리에 끼고 기차가 되기도 한다. 여러 개의 사다리가 모여 그들이 탈출하지 못한 컨테이너가 되는 장면은 감동이다. 좁은 옷장 같은 컨테이너에 몸을 싣고 흔들거리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사실적이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거대한 사다리의 칸칸 너부러지고 걸쳐지는, 공기가 부족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 장면의 백미는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사람들이 한 칸씩, 한 칸씩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치 죽기 직전까지 삶의 희망을 놓치 않겠다는 듯이, 혹은 삶의 희망을 놓기 전까지는 죽은 건 아니라고 다짐하듯이 말이다. 배우들이 바퀴가 있는 사다리를 직접 끌거나 돌리면서 연기하고 고도의 신체 움직임이 사용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은 '밀입국'이라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혀 주었다. 밀입국을 하려는 사람들이 중간 브로커인 '모스코'에게 100달러씩을 지불하고 기차에 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는 무대 왼쪽 바닥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파내어 사람들을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신비하게 느껴지는 강렬한 조명이 바닥에서 뿜어져 나오고, 구멍을 향한 사람들의 욕망과 집착이 어우러진 표정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아래로 내려간 배우들이 다시 오른쪽의 무대 바닥을 통해 다시 올라온다는 것이다. 바닥으로 내려가기 전에는 멕시코, 바닥으로 올라온 이후는 기차의 컨테이너 안이라는 설정이지만,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는 지옥 같은 현실이 떠나온 후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상징 같다.
사람들이 모두 기차에 타고 모스코가 기차의 문을 닫으려고 할 때 '후드'를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악착같이 돈을 지불해야만 기차를 태워주던 '모스코'는 그에게 돈을 요구했지만, 그는 돈을 내지 않는다. 대신 '후드'를 벗어 얼굴을 보여준다. 모스코는 그 얼굴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순순히 남자를 기차로 안내한다. 어? 이 남자는 뭐지? 왜 모스코는 돈도 내지 않은 남자를 얼굴만 보고 기차에 태워준 걸까? 분명 모르는 사이로 보였는데.. 기차 안의 사람들도 예정된 인원이 아닌 '후드'를 입은 남자의 정체를 궁금해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도 그저 우리처럼 돈을 지불하고 이곳에 온 사람일 거라고.' 나중에 '오 마이 갓!' 탄식이 절로 나왔다. 연출이 설정한 정말 '오 마이 갓'이었다!!
기차가 고장으로 멈춰서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절망과 희망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극한의 광기로 모스코를 살해한다. 그리고 하나둘씩 죽어간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키의 증언을 통해 이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는 벌써 거기서 죽었는데 아직 여기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죄값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