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컨 맥밀란 '렁스'
“아이 한 명의 탄소 발자국이 얼마인지 알아? 이산화탄소가 자그마치 1만 톤이야.
그건 에펠 탑의 무게라고! 나는 에펠 탑을 낳는 거야.”
지구환경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여자와 음악을 하는 남자가 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야!’ 재활용하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며, 대형 프렌차이즈 대신 작은 카페에 간다. 양치할 때 물도 안 틀어놓고, 자전거를 타고, 공정 무역 제품을 구매한다.
뉴스와 다큐를 보고, 좋은 책을 읽으며, 투표를 하고 시위에 참여한다. 자선 단체에 기부도 하고, 자선기금 마라톤 대회도 나가며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스스로 ‘우리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안심시킨다.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 하지만 종종 혹은 자주 비닐봉지를 쓰고, 에어로졸 스프레이를 쓰며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한다. 아보카도와 베이컨을 즐겨 먹고, 생수를 사 마신다. 운전하고, 음악을 듣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켜두고, 텔레비전을 본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목욕하면서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를 고민한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남자가 여자에게 아이를 갖자고 말한 어느 날 오후부터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한 끝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세계 인구는 70억 명이 훌쩍 넘었고, 누군가는 포화 상태의 이 지구를 위해 인구를 늘리는데 기여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아이를 낳아 좋은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옳을까? 도대체 부모가 된다는 게 뭐길래, 이산화탄소, 탄소발자국, 홍수, 쓰나미, 우생학, 입양, 유전, 그리고 부모를 닮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매 순간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 질문하며 평생에 걸쳐 스스로에 대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세계 나아가 지구에 대해, 아니면 적어도 좋은 의도를 갖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두 남녀의 삶을 담은 연극 <렁스(Lungs)>다.
무대장치, 조명 등의 미장센 사용을 최대한 절제한 채 두 배우의 연기와 감정, 호흡 만으로 한 커플의 일생에 걸친 희로애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는, 배우 예술 그 자체로의 연극적 매력을 선사하는 연극 <렁스>는 영국 작가 ‘던컨 맥밀란(Duncan Macmillan)’의 대표작이다. 2011년 워싱턴 초연 이후 미국, 영국, 스위스 등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공연됐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었던 2020년에도 한국과 싱가폴에서 작품의 생명력을 이어갔다. 2020년 한국 초연 역시 새로운 형식과 시의성 있는 메시지,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대본의 매력과 힘이 인상적인 작품’, ‘비어 있는 무대를 채우는 배우들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 ‘끊임없이 나 자신과 이야기하게 되는 공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도 객석 점유율 90%에 육박하는 성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와 위로에 서툴러 긴 시간을 돌아온 후에야 서로를 이해하게 된 ‘남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매 순간 갈등하고 부딪히며 성장하는 ‘여자’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후에 남편의 무덤가에 “사랑해.“ 하며 헌화하며 끝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