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근삼 '춘향아, 춘향아'

clint 2021. 10. 25. 17:42

 

춘향아, 춘향아는 종래의 춘향전이 탐관오리인 변학도 한 개인의 탐욕에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가로막는 봉건 지배권력의 구조적인 악습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사랑과 권력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며 늘 충돌하는 구조로 설정해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인간실존을 다룬다. 이근삼의 춘향전 재창작은 당대 민중을 대변하는 명월과 길도라는 인물을 창조하고, 이들과 춘향을 연결 지으며 춘향이 처한 현실의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춘향과 몽룡이 속해 있는 관념적 인물군과, 월매와 변학도, 이한림이 속해 있는 현실적 인물군을 대립시킨 뒤, 이 대결에서 관념적 인물군이 철저하게 패배하게 함으로써 금권의 메커니즘을 폭로한다. 이몽룡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로 나타나고, 그러한 몽룡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부패한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견고함을 강조하고 있다. 서민들의 삶에 대한 조용한 시선 던지기를 통해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의 고단한 삶을 역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의 일면을 비판하고 있다어사는 변사또와의 밀실거래 끝에 어사 출두를 포기한다. 변사또는 저수지 공사를 빌미로 백성들에게서 무거운 세금을 걷고 몽룡의 아버지 이한림은 그와 결탁해 그 돈을 챙기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괴롭히고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가로막는 것은 변사또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봉건 지배층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 연출가 김광림씨의 춘향전에 대한 해석이다.

 

 

 

<춘향아, 춘향아>는 장과 막의 구분 없이 17개의 장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30년대와는 달리 연극의 무대가 반드시 사실적일 필요는 없다는 인식의 변화와 적절한 무대 메카니즘의 이용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장면전환이 자유롭고, 무대 메카니즘의 적절한 활용으로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네나 용의 상징이 그것이다. <춘향전>과 마찬가지로 계기적 시간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고 있지만, 그 속도감에 있어서 큰 차이가 나고, 불의에 대한 저항을 새로운 구체적인 사건을 삽입해 보여주고 있다. 대사는 오히려 <춘향전>에 비해 설명적이지는 않지만, 비사실적이며, 시적이고 희화적인 요소가 많다. 이러한 변용을 통해 <춘향아, 춘향아>는 고귀한 사랑, 그리고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의 추구를 보여주고 있다. 변학도는 전임자이자 절친한 동문인 이한림(몽룡의 부친)과 결탁, 춘향을 벌주고 저수지 공사를 일으켜 민중을 착취한다. 이몽룡은 변학도를 처벌하려 하지만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관료체제의 벽에 부딪혀 어사 출도를 고민한다. 변학도의 학정에 대항하고 민중의 분노를 대변하는 인물로 몰락 양반의 서자인 길도(홍길동과 유사)가 등장한다..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은 어느 시대건 존재한다. 춘향과 몽룡의 사람을 가로막는 장벽 역시 그 시대의 모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종래의 춘향전이 탐관오리인 변학도 일개인의 탐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작품 춘향아, 춘향아에서는 총체적 봉건 지배권력의 구조적인 학습이 춘향과 몽룡의 사람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설정된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이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춘향과 몽룡의 사람의 드라마를 한축으로 하고, 다른 한편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와 권력의 그 물망 속에서 타인은 다 자기의 길을 가게 하면서 자기의 비참의 극대화를 통해 타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광대, 길도의 존재적 의미를 가미하며 이 작품은 직조된다. 단오날, 춘향과 몽룡은 광한루에서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둘은 서로 첫눈에 반하여 서로의 미래를 약속하는 백년가약을 맺는다. 한편 춘향을 대신하여 여동생 명월을 관기로 들여 보낸 명월의 오라비 길도는 그 시름을 달래며 광대 생활을 하고, 마음 한켠 춘향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 깊어졌을 때, 몽룡의 부친 이한림이 동부승지로 제수되어 한양으로 향하게 되고 그로 인해 춘향과 몽룡은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 후임으로 남원에 부임하게 된 변학도는 일찍이 전임 부사 이한림과 동문 수학한 처지로, 이한림은 몽룡과 춘향의 관계를 알고 변학도에게 춘향을 처벌해 줄 것을 당부한다. 몽룡이 떠난 후 그리움의 나날을 보내던 춘향은 변학도의 부름을 받아 수청의 명을 받으나, 일부종사의 도리를 내세워 이를 거부한다. 변학도는 음욕을 품고 춘향을 취하려 하나 여의치 않자 이방과 공모해 춘향이 수청을 들게 할 방안을 모색하여 춘향대신 관기생활을 하는 명월에게 자신을 속인다는 누명과 음해죄를 씌워 처형하여 그 자리를 다시 춘향이 들어오게 하려 한다. 명월의 오라비 길도는 돌아와 민중의 봉기를 모의하나 불발로 그치고 옥에 갇힌다. 거기서 갖혀있던 춘향과 만 나는데, 둘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변학도는 다시 돈을 미끼로 월매를 꼬드겨 춘향의 수청을 받으려 하 나 그 마저도 춘향의 완강한 거부에 부딪힌다. 변학도는 전임 이한림 부사가 착수한 저수지 공사에 열을 올리는데, 그는 그 공사를 빌미로 각종 잡세를 사람들에게 부과하고 그 돈의 일부를 한양에 있는 이한림 대감에게 울려 보낸다.

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전라어사가 되어 내려오게 되는데, 이 사실을 그의 부친은 변학도에게 은밀히 알린다. 남원에 내려와 춘향의 고초를 알게 된 몽룡은 그녀를 구해 내고자 은밀히 변하도를 찾아가 그의 죄목을 들어 위협하지만 오히려 그간의 문제의 주범이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는 결국 어사출도를 하지 못하고 다시는 춘향과 남원 땅을 찾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떠돌이 생활에 들어간다. 저수지의 완공식 날, 변학도는 춘향을 풀어 주고 자신의 선정비와 춘향의 열녀비 제막식을 하고 길도를 처형하려 한다. 길도는 처형 직전 마지막으로 한판 광대놀음을 희망하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한판 놀다가 저수지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월이 지나고 그네에 앉아 있는 춘향에게로 삿갓 쓴 이몽룡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