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경주, 안준원, 고선웅 공동작 '나는 광주에 없었다'

clint 2021. 7. 18. 13:40

 

 

이 작품의 제목 여기 내가 있다가 말하는 는 관객이다.

이 연극에서 관객은 2020년에 있고, 광주에 있고, 극장에 있고, 무대에 있다.

연극의 제목 나는 광주에 없었다.’역시 관객이다. 시기는 1980년이며 장소는 광주다. 관객은 그 당시 여기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극장에 있을 수 있다. 연극은 나의 오늘과 과거를, 나의 사적인 하루와 역사적인 그 시간을 한 공간에 배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면 자신이 앉을 구역을 선택해야 한다. 객석은 당시 광주의 행정구역 처럼 동구, 북구, 서구, 남구 네 군데로 나뉘어있다. 한 구역을 선택해 플라스틱 상자로 만들어진 객석에 앉는다. 이야기는 19805월에서부터 출발한다.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오빠를 기다린다. 아이의 시간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가고, 가정을 이루고, 오늘까지 이어진다. 아이와 엄마의 긴 기다림 사이, 극이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시간은 1980517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 일어난 일이다. 연극의 총 1시간 50분 분량 중 체감상 대략 15분 정도를 제외한 모든 시간이 이 열흘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되어 있다. 관객참여형 공연이라고 명시하고 있는 연극에서 관객은 극이 진행되면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된다. 시민군이 되어 어떤 행위를 수행하기 전까지 연극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보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관객이 할 일은 먼저 움직임을 해석해 내는 것이 되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의 몸짓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연하고 아름다운 동작을 보여주지만, 직선이나 각을 이루는 것으로 구성된 일상적이지 않은 몸짓은 곧 시민이 처하게 될 상황이기도 하다앞서 해석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이 연극의 목적이 그에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그때의 상황으로 들어가 보는 것, 공동체적인 경험을 함께 하는 것, 그래서 하나의 사건을 다시 불러오고 만들어 내는 것이 <나는 광주에 없었다>가 지향하는 지점이 아니었을까. 연극은 이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다. 어느 정도 보기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하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시민군이 되어 배우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기 위해 사용된 전략들이 있다. 관객이 시민으로 극에 처음 합류하는 순간은 배우들에게서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을 석방하라.” “계엄군은 즉각 철수하라.”와 같은 구호들이 적힌 투사회보를 받아드는 때이다.

이때 관객은 처음으로 내 옆자리 관객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후엔 좀 더 과감해진다.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건네는 장면은 배우들이 분한 당시의 시민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곧 시민이 될 관객들을 한마당으로 불러내는 데 효과적이었다. 당시의 중년 여성 시민군으로 분한 배우들이 노래자랑 같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관객을 한데 모았다.

극의 후반부에서 관객은 객석으로 사용한 플라스틱 상자를 하나씩 들고 계엄군에 대항할 바리케이드를 배우들과 함께 만든다. 강강술래의 물결에도 동참한다. 이제 관객의 몸은 배우의 몸과 동일 선상에 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지고, 오늘과 과거의 시간도 섞였다.

언어가 중심에 있지 않았음에도, 극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던 요인으로는 극적 분위기를 잘 살린 긴박하고 무거운 음향뿐만 아니라 선곡 또한 중요한 몫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전진하는 5’, ‘빙빙 돌아라로 익숙한 아일랜드의 노래 ‘Johnny I Hardly Knew Ye’, 정태춘과 박은옥의 ‘5.18’ 등이 그때 일어난 일들을 상기시켰다.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더라도 사건의 흐름과 정서를 따라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게끔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관객의 역할은 연출가의 의도를 넘어서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하는 작가로까지 확장되지는 않는다. 연극의 구조나 결과에 변화를 가져오는 역할이 아니다. 이 연극에서 관객이 가져가야 할 것은 당대의 사건을 지각하고 오늘의 관점에서 경험하는 것 자체에 있다. 배우와 같은 위치에서 행위자가 되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에 의지하던 시각적인 접근이 아니라 청각과 같은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보고, 옆 사람을 헤아려보는 것, 이를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누려보는 것에 관객의 자리가 있다.

 

 

 

 

엄마, 오빠 어딨어” 19805, 광주의 한 어린아이는 엄마 등에 업혀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오빠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소녀에서 숙녀가 되고, 다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 그러는 사이 오빠의 얼굴은 점점 잊히고 이제 더는 오빠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점점 잊혀져가고 여전히 왜곡되고 있는 805월 광주의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연극이다. 805월 당시 광주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근거로 제작했다. 이에 공연 전부터 광주의 5월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관심이 모아졌다. 더구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시아문화원의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5월을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한 작품이었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씨가 2019평창동계올림픽 개회폐식 총연출자여서 기대도 컸다.

4일부터 6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에서 무대에 오른 나는 광주에 없었다5·18민주화운동을 참모습을 다룬 서사시였다. 평범했던 시민들이 왜 총을 들어야 했고, 폭도로 몰려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를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그려내면서 진한 감동을 안겼다. 뻔한(?) 스토리임에도 연극은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다양한 무대기술과 연출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달했다. 배우들의 다이내믹한 안무와 노래, 속도감 있는 극 전개는 러닝타임 90분이 금세 지나갈 정도였다. 극장1 공간을 십분 활용한 음향과 조명은 관객들이 마치 시위 현장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이었다. 연출자와 작가 등이 이 연극을 위해 많은 연구와 자료 수집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극은 40년 전 광주시민들이 겪은 열흘간의 참상을 관객들의 참여로 재현했다. 무대부터 달랐다.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시키는 무대로 구성됐다. 관객들은 무대를 사이에 두고 양 쪽으로 나뉘어 바닥에 앉았다. 무대를 소통과 공감을 위한 이야기를 담는 공간으로 보통의 극장형 연극무대와 다르게 접근한 것이다. 특이한 건 객석을 동구, 서구, 남구, 북구 등 4개 구역으로 구분했다는 점이다. 19805월 당시광주시 행정구역을 감안해 세팅됐다.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구호도 외치고, 공중에서 살포되는 전단도 함께 읽었다. 노래도 하고, 위로의 춤도 췄다. 주인공이 따로 없었다. 무대 위의 배우, 객석의 관객 모두 주인공이었다. 관객들은 연극에 직접 참여하면서 자연스레 공연이 가지고 있는 뜨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연극은 계엄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민들의 관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관이 올라가는 도중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배우가 등장해 이 사람들은 방금 하늘로 올라갔어.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새하얀 눈이 되어 내려올거야. 그러면 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서 따뜻한 아랫목에 눕혀줘야지. 그러면 총에 맞아도 찢기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내내 참았던 눈물샘을 터트린다.

공연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무대위 연단에는 관이 하나 놓이고, 배우들이 촛불을 하나 둘씩 놓는다. 그 뒤를 따라 관객들이 일어나 손에 들고 있는 촛불들을 놓는다. 5·18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 천도와 함께 그들의 희생이 촛불 혁명으로 승화됐다는 걸 암시한다. 이어 어둠 속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리고, 관객들은 그 소리를 따라간다. 서서히 극장1의 빅도어가 좌우로 열리면서 밝은 바깥 세상의 빛이 어두컴컴한 극장 내부를 밝혀준다.

눈동자가 갑자기 밝아진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연두색 신록이다. 39년전 5월 전남도청 옆 가로수의 잎처럼 푸르게 빛난다. 시간은 흘렀지만 805월은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배우들이 매일 연습을 마무리하면서 뼈에 아픈 역사, 805월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겠습니다고 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