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프쉬케, 그대의 거울'
『연극무대에 올려 무의식의 세계가 얼마나 광범하게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싶어요.』 산울림 극장에서 공연하는 심리극 『프쉬케-그대의 거울』의 작가 김정일 씨(정신과 전문의). 그는 이 작품에서 우리의 본능 속에 감춰져 일상을 지배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끄집어내 우리의 눈앞에 보여 준다. 인간 심리의 내면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독특하며, 작가 자신이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전문가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신뢰가 간다. 극작가로서는 비전문가인 그의 작품이 산울림 개관 5주년 기념작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
『원래 국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가업을 잇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죠. 그래서 전공을 택할 때 사람의 육체보다 정신을 다루는 정신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틈틈이 글을 써왔죠.』 작가 김정일씨는 중·단편소설을 의학전문지 등에 발표해왔으나 희곡은 이번이 첫 작품. 그는 스승인 김유광박사(국립정신병원 의료부장)의 권유에 따라 정신 치료요법의 하나인 사이코 드라마용으로 희곡을 썼다가 산울림 대표 임영웅씨의 공연제안으로 무대에 올리게됐다. 『연출을 맡은 윤석화씨와 연습과정에서 작품을 많이 고치며 무대 감각도 익혔습니다. 희곡을 쓴다는 것이 어렵구나 하면서도 애착은 점점 더해갑니다.』
작품 제목 중 「프쉬케」란 심리를 뜻하는 영어 사이코(Psycho)의 어원이 된 그리스신화 속 인물.
절세미인 프쉬케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질시 속에서도 에로스 신과 사랑을 나누며 신의 세계를 엿본다. 프쉬케가 인간의 세계를 넘어 들어가고자 했던 신의 세계가 곧 신비의 세계며 무의식의 세계. 『프쉬케-그대의 거울』은 신의 세계에 뛰어들고자 하는 정신병환자와 신의 세계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자의 아버지 민속학자, 신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치료하고자 하는 정신과 의사 등 3자의 갈등을 기본 축으로 드라마를 끌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