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그 개'

"괜찮아, 우리 모두는 유기견이야."
저택의 운전기사인 아빠와 둘이 살아가던 중학생 해일.
해일은 우연히 유기견 무스탕을 만나 우정을 키우고, 분홍 돌고래 핀핀의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리며 비밀스런 속내를 도화지 위에 펼쳐나간다. 그 무렵 위층에 이사 온 선영 가족을 만나게 되고, 난데없이 욕을 뱉는 틱 증상에도 애정과 위로를 보여주는 선영의 믿음에 해일은 웹툰 작가의 꿈을 점점 키우게 된다. 그러다 해일은 아빠를 대신해 장강의 반려견 보쓰를 산책시키러 저택에 드나들서, 장강과 아빠가 없는 빈 저택의 정원에 영수와 별이, 해일과 무스탕이 드론을 날리러가는 중,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보쓰가 별이를 공격한 것이다.

중학생 주인공이 왕따고 외로움으로 유기견에 애정을 쏟는다. 아버지는 재벌 운전기사로 어렵게 살아간다. 가난 때문에 각종 오해와 불행을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다소 진부한 설정이지만 연극만큼은 특별하게 거듭날 수 있다. '그 개'가 그런 작품이다. 주인공 하해일은 중학생 소녀다. 틱 장애를 앓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자연히 왕따를 당하고 외롭게 지낸다. 어느 날 해일은 유기견 무스탕을 만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이름이 멋있어야 한다면서 무스탕이라고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짓는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모신 제약회사 사장 장강에게 굽실대며 딸을 홀로 돌본다. 이 작품의 특별한 지점은 무스탕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 유기견 무스탕을 사람이 분장하고 연기해 웃음을 준다. 과장하면서 절제하는 몸짓과 표현 때문에 찬찬히 바라보다 보면 유기견이라는 사실을 잊고 만다. 사람이 유기견이고 유기견이 사람인 것처럼 그린다. 유기견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마음껏 놀지만 어느 날 비극적 사건에 휘말린다. 해일이 드론을 가지고 놀다 돌보던 아이가 죽고 만 것이다. 이 아이는 제약회사 사장의 애완견에 물려 죽었지만 애꿎게 무스탕이 책임을 뒤집어쓴다. 마치 유기견의 목숨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을 수 있다는 것처럼. 억울한 죽음조차도 억울할 수 없는 상황은 점차 절정으로 치닫는다. 천진한 유기견 무스탕과 난폭한 사냥개 보쓰의 대비는 사람이 연기하면서 공감의 폭을 넓힌다.

작가의 글
자주 가는 북악산 등산로에서 덩치 큰 흰 개를 만났다. 아직 눈이 맑고 털이 고왔다.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유기견으로 보였다. 한참동안 따라오던 개는 오지 말라며 인상을 쓰던 나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저택 정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높은 벽 너머로 뛰노는 아이들의 머리가 살짝살짝 보였다. 집안에 트램펄린이 있는 거야? 좁은 문틈 사이로 다가가 엿보려는 순간 사납게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물러섰다. 그 날, 개 두 마리를 접한 경험에서 이 작품은 시작됐다.
"세상의 변화에 있어 근본적인 문제는 아주 작은 것에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성북동)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은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