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훈 재창작 '페인킬러'
painkiller는 의약품 “진통제”를 의미한다.
이 연극은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 1862~1931)의 윤무(Reigen)에서 소재를 따왔다.
희곡 <윤무>는 열 명의 등장인물들이 한사람씩 각각 상대를 바꿔가는 성행위 전후에 보여주는 심리상태를 그린 작품이다.
창부와 대학생, 대학생과 주부, 주부와 그녀의 남편, 남편과 부하 여직원, 여직원과 기자, 기자와 탤런트, 탤런트와 국회의원, 의원과 소녀가장, 소녀가장과 예술가, 예술가와 1장의 창부 등 10개의 장면을 남녀 출연자 2인이 의상과 가발, 모자 그리고 안경을 쓰고 벗으며 변화된 모습으로 등장해 남녀의 몸을 밀착시키는 광경을 구현해 낸다. 물론 이불을 덮거나 가리고 표현하도록 연출되었기에 적나라한 행위를 펼쳐보이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인 머리 아파하는 상대에게 진통제를 주는 장면까지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말
120년 동안 진화한 공허, 자기 파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진다. 이 10개의 장, 10개의 성적 관계를 방류하고 가둔다. 이 같은 구조는 120년 전의 희곡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윤무(Reigen)>라는 희곡에서 가져온 것인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성적 관계는 ‘소 데카메론’이라 불리며 1897년 당대에 파문을 일으킨 혁신이었다. 인물들을 순환구조로 묶어 연결감을 부여하는 구조의 매력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사회 안에서 우리 삶도 똑같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확인하는 현실은 때로는 알먄서, 때로는 모르게 연결되고 이어진 인간 사회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19세기와 21세기의 차이만큼 희곡 <페인 킬러(PainKiller)>의 구체적인 인물과 상황, 관계는 전혀 다른 설정으로 전개된다. 인물들은 저마다 상처를 갖고 내면화된 상처는 정체성의 일면이며 결핍으로 드러난다. 고독감을 견디지 못하는 불안이 타인과의 관계를 강요하며 집착한다. 매개인 섹스는 오직 욕망 해소로만 기능한다. 고통이나 외로움을 잊으려고 스스로를 내몬다. 수많은 타인과 맺는 수많은 관계 뒤틀린 관계는 애초 목적과는 다르게 허무를 증폭시킨다. 증폭된 공허는 또 다른 충동으로 자신을 파괴한다. 불통과 소외, 기만은 사회계급을 망라하여 연결되어 있고, 떠도는 현대인들의 욕망은 관계의 본질을 마비시킨다. 고통을 죽이는 자라는 의미의 Pain Killer와 진통제 중에서 굳이 제목을 영문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통제의 鎭(진)은 진정시킨다? 진압한다는 의미로 Pain Killer의 Killer보다 완화된 의미를 가진다. Killer는 이미 끝없이 고통을 죽여온 결과이나 진통제의 鎭(진)은 고통을 누그러뜨리는 정도로 이 역시 과정에 놓여있는 뉘앙스가 강하다. 2020년 우리나라 곳곳에서 목격되는 충동 살해, 분노조절 장애 관련 범죄 역시 이 마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과정이 아닌 결과로 보아야한다. 수많은 뿌리 없는 관계는 역설적으로 단 하나의 관계도 없음을 의미한다. 그 허무의 결과가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 면면에 주목하였다.
위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