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황 '메멘토모리'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죽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추해지고 파손되는 것을 막아주는 구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이 바로크 시대로 넘어오면서 바뀐다. 죽음은 처참한 현실이 됐고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에 죽음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반드시 죽는다. 숙명이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는 죽음 자체를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고 살아있는 매 순간을 소중히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 연극 메멘토모리는 찰나의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삶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삶과 죽음, 행복한 순간에 떠나가야만 했던 작은 생명에 대한 잊힌 이야기를 그린다. 죽음을 통해 본 우리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죽음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 그 속에서 소중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라는 성스러운 전언인 것이다. 우리들 삶과 죽음은 서로 이방인이다.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는다. 해서 끝내 나를 덮치고 엄습 하는 노상강도 같은 꼴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맞고 만다. 오늘 우리는 죽음에 대하여 말을 해 볼까 합니다. 낯선 것, 모르는 것!
생각만 해도 무섭고, 슬프고, 끔찍하고, 섬칫한 죽음에 대하여. 삶의 허무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해 주는, 허무의 진원지 - 죽음. 우리들 삶에 드리워져 있는 불안의 그림자의 근원인 죽음. 그 어느 날 전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의 뒷덜미를 덮치는 죽음. 선뜻 꺼내 놓고 말하기에는 웬 지 두렵고 꺼림칙한 그것에 대해…할 수만 있다면, 피할 수 만 있다면, 영원히 유예시키고만 싶은 그 죽음에 대해 말입니다.
1] 그러나 죽음은 삶을 전제로 합니다.
2] 삶이 없으면 죽음도 없습니다.
3] 죽음은 이미 어머니의 태속에서부터 함께 싹트고 있습니다.
4] 삶이 있기에 죽음이 있습니다.
5] 삶과 죽음은 사실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끝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속에 간직되어 있던 죽음이 어느 날 문득 제 모습을 갖추고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지금 당장, 여기 이곳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나갈까 합니다. 사후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문제로서의 죽음. 삶 다음에 올 그 죽음, 미래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죽음, 살아있는 죽음, 지금의 죽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1] 죽음의 거울에 비쳐서 더욱 더 확연해질, 더더욱 굳건할 삶의 얼굴을 찾기 위해서, 이 일회적 삶의 빛나는 가치와 중요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 자기 삶의 투명함을 위해서, 이 삶의 절대적 긍정을 위해서 말입니다.
3] 마지막이란 일상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지 어디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게 아닐진대, 삶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끝마침도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죽음 때문에 우리들은 삶에 달라붙어야 합니다. 죽음 때문에 우리들은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