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 '승평만세지곡'
줄거리
조선왕조 중엽. 만주북방의 여진족이 일으킨 후금국(後金國)은 팔기병이라는 막강한 사들을 앞세워 명나라를 자주 침략하니,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한다. 당시 조선왕 광해군은 강홍립을 오도도원수로 봉하고 2만명의 병사를 파견한다. 출정에 앞서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명과 후금과의 싸움에 조선병사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한다. 강홍립은 후금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병사를 포로가 되게 하여 적을 안심시킨 후, 한밤중에 급습하여 왕자 홍타시(弘打時)를 비롯한 적장을 생포한다. 강홍립은 홍타시에게 싸울 의사가 없었음을 밝히고, 회군할 명분을 찾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청한다. 결국 포로를 포함한 조선병사들은 귀국하게 되고, 강홍립은 포로들 대신 인질로 남아후금을 도와 대명전(對明戰)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공주 비연의 사랑도 받게 된다. 한편 조선에서는 반정(反正)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한다. 그런데 반정공신 중 대다수가 명나라만 숭상할 뿐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후금국을 오랑캐 나라라 하여 경시하고, 후금의 왕이 죽은 뒤 왕자 홍타시가 왕위를 계승했는데도 경조 사절을 파견하지 않으니, 격분한 후금은 강홍립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한다. 십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강홍립은 비로소 반정이 있었다는 사실과 자신은 조선과 명나라와의 오랜 친교에 누를 끼친 인물로 적대시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강화(講和)가 성립되고, 강홍립은 누명을 벋기 위해 제주도로 광해군을 찾아간다. 그러나 유배지에서의 광해군의 모습을 본 강홍립은 비참한 심정이 되어 되돌아온다.
평화를 되찾은 조선왕실에서는 세자빈을 간택하는 등 안정을 유지하는 듯 했으나, 그간 국호를 대청(淸)이라 고친 후금국이 조선에 홍타시를 황제로 추대한다는 국서를 보내주도록 요청한다. 조선은 명나라만이 유일한 천자의 나라임을 들어 이를 거절하니, 이에 격분한 홍타시는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란하고 청군에 대항하나, 팔기병에게 당할 수 없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롭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고 강홍립이 전쟁에 뛰어들지만, 강홍립마저 홍타시 군에게 잡히고, 조선은 청나라에 패하는 병자년의 국치를 역사에 남긴다. 십년 후, 해마다 정월 초가 되면 강물에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흘려보내며 강홍립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부인 홍씨에게 손자 식(湜)이, 할아버지가 오랑캐 군에게 투항했을 뿐 아니라, 오랑캐를 도와 대명전에 참전한 불충한 인물이라는 평을 하니, 홍씨는 지난 20여 년 간의 사실을 손자에게 들려주며 만고충절지인인 할아버지를 비난한 손자에게 회초리질을 하여 잘못을 일깨운다.
작가의 글
현재 정치적으로 진보, 보수가 나뉘어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며, 불과 4세기 전에도 개혁의 기치를 들고 반정(反正)을 일으킨 세력에 의해 세워진 어리석은 군주와 집권세력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지 못하고, 침략국에게 항복을 하는 국치(國恥)를 되새겨, 현재의 국난과 위기에 대처하는 거울이 되려고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베세토 연극제나, 한중합작 공연물로도 적합하리라 생각하며, 다수의 연극인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등장인물과 장면이 많은 대작이기에 문화관광부나, 문화예술위원회 또는 한국연극협회의 기획물로 공연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