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상률 '개님전'

clint 2021. 5. 17. 07:02

 

 

노랭이황씨 할아버지 집에는 진돗개 세 마리가 있다. 어미 개 황구와 황구의 새끼 노랑이와 누렁이. 황씨 할아버지는 진돗개들을 마치 한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개놈이 아니라 개님으로 대접한다. 그도 그럴 것이 황구네 세 모녀는 곳간에 놓인 가마니를 여기저기 쏠아 놓는 쥐를 몽땅 잡아다 놓고, 아기 똥도 핥아 주고, 술 취해 잠든 황씨 할아버지가 담뱃불에 번진 불길에 타 죽을 뻔한 것도 구해낸다. 이렇듯 제대로 밥값하는 황구네 세 모녀에게 황씨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먹는 식당에서 국밥도 사먹이고, 직접 손수레도 태워준다. 황씨 할아버지와 황구네 세 모녀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애틋한 정을 쌓아 가니, 기력이 쇠한 황씨 할아버지에게 황구를 고아 먹으라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황씨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황씨 할아버지는 죽고, 황씨 할아버지 식구들은 황구네 세 모녀가 진정 가족이었기에 개들에게도 상복을 입힌다. 하지만 얼마 못가 황씨 할아버지 식구들은 황구네 세 모녀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고, 황구를 뺀 노랑이와 누렁이는 각각 선소리꾼과 서울 옷 장수에게 팔려 간다.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팔려 간 노랑이는 오며 가며 볼 수 있지만, 멀리 서울로 팔려 간 누렁이 걱정에 홀로 남겨진 어미 개 황구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편, 누렁이는 서울 옷장수아저씨와 같이 옷을 파는 진돗개길남이와 함께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누렁이는 개 학교라 불리는 개 훈련소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훈련도 받고, 옷 파는 개로서 데뷔도 한다. 그사이 누렁이는 낯선 서울 생활에 힘이 되어 준 길남이를 의지하고, 둘은 사랑을 싹 틔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누렁이는 주인을 따라 잠시나마 진도로 돌아오고, 모녀는 다시금 상봉한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누렁이의 배 속에 새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으니....

 

 

 

개님전은 전라남도 진도의 노랭이황씨 할아버지와 그 집에 사는 진도개 황구, 그리고 황구의 자식 노랑이와 누렁이의 이야기이다. , 사람과 개 이야기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라 개다. 그렇다고 우리가 늘 봐 오던 평범한 이야기를 떠올린다면 큰 오산이다. 1958년 개띠 해에 태어나 사람보다 개가 더 유명한 진도에서 진돗개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박상률 작가가, 고향 진도를 배경으로 진돗개를 소재로 하여 소설을 썼으니 작가의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섬세한 묘사는 물론이거니와 옛날이야기처럼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 터. 게다가 개님전이란 제목은 또 어떠한가? ‘개새끼, 개자식, 개놈, 개수작등 웬만한 비속어와 낮잡아 이르는 말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개님이라 존대하니, 독자들은 고물거리며 샘솟는 궁금증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박경장 선생역시 이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개님전을 뜯어보기(분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독특한 작품을 판소리 아니리조 사설체 형식을 차용한 동화 같은 작품이라 명명한다. 본문 서술 방식 또는 문체를 판소리 아니리조 사설체 형식을 차용했고, 개가 주인공인 우화이기는 하나 풍자 소설은 아닌, 그러나 주인집 황씨 할아버지와 황구네 세 모녀 사이의 삶과 죽음을 초월한 두텁고 애틋한 정은 동심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으니 동화이기도 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계열의 소설 탄생을 알린다. 아울러 박경장 선생은 새로운 형식을 써내려는 작가들의 도전과, 그 새로운 글을 또 다른 갈래의 이름으로 분류하는 문학평론가들의 응전이 반복되면서 문학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더해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도전은 청소년 문학의 대가이자 청소년 문학의 선구자인 박상률 작가이기에 가능하고, 개님전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박상률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를 졸업했다. 1990년 '한길문학'에 시 '진도아리랑'과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에는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 희곡 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 현재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활동하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까치학교', '바람으로 남은 엄마', '나비박사 석주명', '인권변호사 조영래', '풍금치는 큰 스님 용성', '봄바람', '진도 아리랑', '풍경 소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