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재림 '생산적 장례식'

clint 2021. 5. 10. 13:33

 

 

스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스승이고 반백이 되고도 선생님 앞에서 어린 시절 학생이 되어버리는 것이 제자이다. 20년 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신 고 주상철 선생님의 빈소에 제자들이 하나둘 찾아왔다. 상주는 아내 정이영과 여동생 주정숙. 남아있는 가족이라고는 두 사람뿐인 조촐한 빈소에 경찰이 된 성효와 변호사가 된 성구가 찾아온다. 사실 이영과 정숙, 성효와 성구는 모두 상철 선생의 제자들이자 둘도 없는 절친들이었다. 청춘이 만개하던 그 시절, 성효와 성구는 예쁘고 똑똑한 이영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이영에겐 니체를 사랑한 선생님만이 모든 것이었다. 여기까지야 현실에서도 흔하게 있는 일이니 낯설지 않은 전개다. 주 선생은 십년 전 성추행 사건으로 학교를 나오게 된다. 이후 이영은 남편 대신 생계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고 선생은 매일같이 술에 빠져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영이 집을 비운 사이 선생은 자살하고 만다. 자살하더라도 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아내에게 남기고. 이제 장례식장에는 뻔하지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 거침없이 오고 가게 된다. 연극은 한마디로 세련되지 않고 거칠다. 무대는 빈약하고 허전하다. 익숙한 소극장 공연의 매력이자 취약점이다. 하지만 전하는 이야기만은 결코 가볍지 않고 곱씹을수록 단내가 난다.

 

 

 

 

작가 강재림은 "연극을 통해 이상을 잃어버린 인간과 이상을 가졌지만 막혀버린 인간을 조명하고 싶다. 장례식장은 살아 있는 사람의 감춰진 욕망이 잘 드러나는 장소다장례식장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세상 모든 추악함을 이참에 거둬가 주소서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관객을 장례식장에 초청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