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규 '버스 정류장'
김종규 作 <버스 정류장>은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해가는 산업화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것, 보다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 재조명해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시의 한복판 버스 정류장을 무대로 하여 진행된다. 버스정류장에서 일흔이 넘은 노파와 젊은 여자가 버스를 기다리며 만나게 된다. 노파는 어디에 사는지 모르는 아들에게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고, 여자는 자기를 데리러 오기로 약속한 아버지의 차를 기다린다. 하루 종일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노파와 여자의 정체는 극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밝혀진다. 노파는 젊은 시절 가난 속에서 혼자 아들을 키우며 아들을 방에 가두고 일을 나가는데 그만 불이 나서 아들은 전신 화상을 입어 죽을 지경에 이른다. 노파는 아들을 치료하고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아들은 병든 노파를 버린다. 그 후 사회적으로 출세한 아들은 노파의 아들인 것을 부인하게 되고, 노파는 아들이 어머니를 버린 패륜아로 지탄받게 될 것을 염려해 양로원을 도망친다. 젊은 여자는 자신을 최고로 키우려는 아버지의 강요로 어려서부터 억지로 피아노를 비롯해 온갖 외국어를 배우고 학원을 다닌다. 아버지는 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최고의 교육을 시키지만 딸은 지겨워 본드를 흡입하는 등 탈선행위를 일삼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가출한다. 극의 결말에 가서 노파의 아들이 젊은 여자의 아버지인 것이 드러난다. 버스 정류장에서 노파와 젊은 여자, 노파의 아들인 남자가 만나게 되고 노파는 아들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
이 작품은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라는 식의 변화를 예찬하고 추구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는 관계, 사랑의 문제를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다루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너무나 오래된 해묵은 주제, 고전적인 주제로 진부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것만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사회에서 그래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변치 않는 사랑이며, 그 대표적인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조명했다. 이 작품이 지극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 시대에는 오히려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