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진주 'ANAK'

clint 2021. 4. 23. 08:20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 여자가 죽었다. 자기의 아이를 끌어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작은 도시. 휴가 차 고향에 내려온 호윤은 일주일 전 발생한 필리핀 다문화가정 모자 추락사건의 주인공이 동창 재형의 형수라는 걸 알게 된다. 자살로 사건이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에서 호윤은 재형을 찾아가 위로한다. 만취한 재형은 자신이 형수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호윤은 재형의 집에서 조카 한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초음파사진을 발견한다. 무언가 숨겨져 있음을 직감한 그는 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려 하는데.....

 

 

작가의 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해 아파트서 결혼이주여성 생후 2주 딸 안고 투신딸은 숨져(2020-01-03)- 연합뉴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시부모 갈등·우울증에 투신자살 시도(2015-08-17) - 시티21

베트남 이주여성, 두 자녀와 투신자살(2012-11-23) - 이투데이

타국에서 온 그녀는 왜 자신의 아이들을 끌어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을까. 이 기사를 읽다가 문득 메데이아가 떠올랐다.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떠난 여자. 우리나라에는 결혼을 통해 정착한 수많은 이주여성들이 있고, 이들과 이들의 자녀들은 여전히 이방인으로 인식된다. “우리대부분이 그들을 그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자신들과 다른 존재로 여기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 혹은 그들을 보아도 듣지 않고 침묵한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내러티브가 포장한 이미지를 쉽게 믿고 안심하기도 한다. 여전히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현실은 쉽게 묻혀 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혼 이주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ANAK>은 욕구와 정서를 온전히 지닌 하나의 인간이자 권리와 의무를 가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가고자 한다.

 

(제목인 Anak은 필리핀 출신의 Freddie Aguilar가 부른 Anak이라는 노래다. 1978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까지 했으며 세계 56개국 言語로 번안돼 대단히 인기를 끌었고 韓國에서도 여러 명이 번안해 불려졌다. 이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ANAK은 매매혼, 가정폭력, 학교폭력과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가난, 폭력, 투쟁이 점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불편한 이야기는 손가락 하나로 넘겨버릴 수 있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행해야 할까? ANAK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폭력적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자는 제안이다이 연극 안에서 수많은 시선과 입장의 차이, 시선의 교차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시선은 우리의 위치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 끝난 후 우리에게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