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릭 입센 '리틀 에욜프'
1894년 작 [리틀 에욜프]는 입센이 66살에 쓴 희곡이다. [대건축사 솔네즈](1892) 다음 작인데 버나드 쇼와 몇몇 평자들은 [리틀 에욜프]를 전작의 후속 작처럼 여겼다고 한다. 두 작품 줄거리가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건축사 솔네즈가 "난 신을 위한 교회나 높은 탑은 짓지 않겠어. 오직 사람들을 위한 집만 지을 거야."하다가 "그러면 뭐 하나. 사람들 사는 집 짓는다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나. 가정집 지어봤자 결국 그런 가족이나 들어와 살겠지."라는 장면이 있는데 [리틀 에욜프]는 바로 '그런 가족'에 해당하는 가정을 그리고 있다.
극은 잘 꾸며진 방에서 올케와 시누 사이인 두 여성의 대화로 시작한다. 올케 리타는 금발에 키 큰 30세가량의 미인이고 시누이 애스터는 중키에 야윈 타입으로 검은 머리칼과 차분한 눈매를 한 25살 아가씨다. 리타는 여행 다녀온 남편 앨마스의 짐을 푸는 중이고, 애스터는 조카 에욜프를 보러 들렀다가 오빠의 여행 가방을 보고는 반색한다. 오빠는 애스터를 보자마자 두 팔을 뻗어 반긴다. 앨마스와 애스터는 이복남매로 가난한 고아였으나 앨마스가 "황금과 푸른 숲"을 지닌 리타와 결혼한 덕분에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리타는 처음부터 그한테 반했던 모양이고, 앨마스는 리타를 두려워했으나 그녀가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운데다가 리타가 가진 황금과 푸른 숲('예금통장과 부동산')으로 동생 애스터를 부양할 요량으로 결혼한 것 같다. 이 부부의 아들 에욜프는 장애가 있어 목발을 짚고 다닌다. 에욜프가 아기였을 때 알프레드가 잠시 테이블 위에 아기를 두고 아내 리타와 섹스를 했는데 그때 아기가 떨어져 장애를 입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앨마스는 [인간의 책임]이라는 책의 집필에만 몰두하고 아내와의 잠자리를 거부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다 어느 날 "서재에서는 더 이상 평온을 느낄 수가 없어서" 집필을 관두고 훌쩍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책 집필은 관두고 앞으로는 에욜프를 위해서만 살겠다고 선언한다. 아이를 잘 가르쳐서 재능을 꽃피우도록 하는 게 자신의 새로운 소명이고, '인간의 책임'은 책으로 쓰는 대신 아들을 돌보는 것으로 실천하겠다고요. 늘 욕구불만에 시달리던 리타는 지금까진 책 때문에 남편을 절반밖에 소유하지 못 했는데 이제는 또 아이한테 남편을 뺏기게 생겼다며 홧김에 아이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내뱉는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가 물에 빠져죽는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쥐를 쫓아준다는 괴이한 할머니가 1막에 등장해 불길한 냄새를 풍기더니만 이 부부가 한창 성생활 문제로 싸우고 있을 때 아이가 딱 죽어 버린 것이다.
2막은 안개 자욱하고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물가에서 앨마스가 멍하니 눈앞의 수면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한다. 애스터가 오빠를 찾아와 위로하지만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표류하는 난파선처럼 제멋대로, 부조리하게 흘러가는 게 인생에 참담해한다. 그는 이런 얘기를 아내와는 하지 않는다. 오직 애스터하고만 나눈다. 이복여동생 애스터와 둘만 살던 때를 완벽하고 행복했던 시절을 이상화한다. 동생 애스터 역시 오빠를 사랑하긴 하는데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고 앨마스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앨마스는 이제 아이도 없으니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여동생과 살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어렵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는 자기를 짝사랑하던 다른 남자와 떠나버린다. 리타는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편 애정을 갈구한다. 그러나 리타의 마음을 앨마스는 여전히 거부할 뿐더러 아이의 죽음을 계기로 이제는 아내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도 않는다. 리타가 그날 자기를 유혹하지만 않았어도 에욜프는 장애를 입지 않았을 거고 그러면 오늘날 물에 빠져 죽지도 않았을 거라며 리타를 탓한다. 리타가 반격한다. 자기가 아이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던 건 아이 고모인 애스터가 중간에서 엄마 노릇을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애스터 아가씨는 당신의 리틀 에욜프였어요. 당신은 우리가 황홀한 시간을 갖고 있을 때 그녀를 에욜프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바로 그때 또 하나의 리틀 에욜프가 절름발이가 된 거에요." 부부는 서로에 대한 맹비난과 자기 방어를 몇 차례 한 끝에 둘 다 아이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앨마스는 이제 우리 사이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으니 헤어지자고 요구한다. 리타가 애정은 포기할 테니 그냥 옆에서 당신 수발이라도 들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애스터가 건축기사와 떠나고 리타가 뜬금없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에욜프 방에서 재우고 에욜프의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주며 키우겠다고 한다. 그러자 앨마스가 그럼 자기도 그 일에 동참하기로 하고 멜로물이 갑자기 계몽주의 교훈극으로 끝난다.
가난에 굶주리고 헐벗은 사회와 부유하고 행복한 지주의 집. 상징과 일상! 자기에 대한 의무에 충실한 아내와 타인에 대한 의무에 충실한 남편, 아내와는 다르게 영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여동생 애스터... 사랑과 의무, 자신에 대한 또 타인에 대한 의무, 영적인 여성과 육적인 여성... 삶과 죽음! 그 사이 사이의 갈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일상 안에서 제시하고 꿈꾸게 한다. 여성의식에 대한 해방과 사회 모순에 대한 입센만의 새로운 방향이 뚜렷이 담겨 있다. 치밀하게 배치된 상징과 복선, 인물들의 극적 성격 등 입센의 독특한 철학이 잘 드러나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