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호프 '기념식'

clint 2021. 4. 4. 21:51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자신을 돌이키고 반성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을 지식인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대중이라고 부른다 기념식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대중에 속한다. 그러기에 독자와 관객은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며 그들의 행동에 전폭적인 동의를 표한다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의 저급한 욕망과 어리석은 행동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 감정의 정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기념식189112월에 탈고되었고 18922월 검열을 통과해 출판되었다. 작품의 근간이 된 것은 1887년에 집필된 단편소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었다. 체호프는 기념식의 장르를 단막 슈트카로 규정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 역시 보드빌로 수용 가능하다. 체호프는 1903년에 출간될 자신의 전집을 준비하면서 190112월 등장인물들의 배역을 수정했고, 텍스트까지 일부 교체 · 삽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보드빌 장르에 대해 말하면서 체호프는 끝없는 분규와 신속한 움직임 및 사건 전환을 지적했다. 이런 특징이 기념식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은행 창립 15주년 기념식을 준비하면서 은행장 쉬푸친은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연설문을 준비한다. 그의 말에는 언제나 이 쉬푸친이 아니었다면" 하는 표현이 들어있다. 그 정도로 그는 자기 자신과 성공적인 업무추진에 대한 확신에 넘쳐있다. 나이 든 회계사 히린은 쉬푸친을 도와 며칠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다. 그런데 쉬푸친과 히린은 여자에 대한 태도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쉬푸친은 여자를 존중하면서 그들의 모든 바람을 충족시켜주려는 자상한 성격이다. 반면에 히린은 여성들에게 공격적이며 조금도 우호적이지 않다 여지를 둘러싼 문제로 의견 대립을 보이는 가운데 쉬푸친의 아내 타치야나 알렉세예브나가 등장하면서 첫 번째 심각한 분규가 발생한다. 수다 떨기를 즐기는 타치야나와 그것을 싫어하는 히린의 충돌이 지속되는 가운데 남편 문제를 들고 찾아온 청원인 메르추트키나의 등장으로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은행이 어떤 곳인지, 자기가 왜 이곳에 찾아와 남편의 문제를 청원하는지 전연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메르추트키나에게 물려버린 쉬푸친은 히린에게 그녀를 몰아내라고 한다. 그러나 히린은 그것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오히려 은행장의 아내인 타치야나를 쫓아내려고 한다. 히린은 타치야나 알렉세예브나를 쫓고, 쉬푸친은 그들 두 사람을 쫓아 달리는 포복절도할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된다타치야나를 쫓던 히린이 방향을 바꿔 메르추트키나를 추적하고, 그녀는 쉬푸친의 품안에서 기절한다. 이런 식으로 기념식은 쫓고 쫓기는 희극적인 장면으로 넘쳐난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과 시각에 은행의 대표단이 도착한다. 등장인물들은 물론 관객도 잊고 있었던 대표단의 등장은 웃음과 아울러 혼란스러운 결말을 야기한다. 각자의 관심과 이해관계만을 쫓는 등장인물들의 행태가 야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어느 정도 풍자적인 의미를 가지지만,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드빌 본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자신을 끝까지 내세우려는 과시욕(쉬푸친) 어떤 경우라도 노동에 대한 대가와 포상을 받으려는 욕심(히린) 누가 뭐라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는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수다스러움(타치야나), 때와 장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는 동물적 본능(메르추트키나). 이런 욕망들이 벌이는 소란스러운 일장 활극이 기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