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호프 '결혼 피로연'

clint 2021. 4. 4. 09:56

 

 

 

세상은 이미 저만큼 나아갔는데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빛바랜 추억이나 관습에 함몰된 채 그 시간대에 유폐되어 있다 결혼 피로연의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다 명망가나 저명인사를 초대하여 피로연을 빛내려는 소시민의 어리석은 욕망과 거기 초대받은 소박한 늙은이의 바람이 충돌하여 풍자적인 음조를 가지는 희극이다.

 

 

 

188910월에 탈고된 결혼 피로연1884년에 집필된 단편소설 장군과 함께 한 결혼피로연을 개작한 것이다. 체호프는 다른 단막 보드빌을 슈트카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결혼 피로연단막 스쎄나로 정의했다. ‘스쎄나라는 말은 영어의 (scene)’과 같은 말이다. 본래 그리스어 스카에나에서 유래한 말로 라틴어를 경유하여 유럽 각국어로 변용된 것이다. 그 의미는 공연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공간이다. 거기서 무대라는 말이 나왔고, 장면이라는 말은 나중에 추가되었다. 체호프가 결혼 피로연에서 스쎄나라는 말을 쓴 것은 희곡의 극적인 상황이나 결과에 주목하기보다, 일상생활에서 관찰되는 사건이나 일화를 더욱 중시했음을 의미한다. 체호프 희곡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결혼 피로연의 장르를 보드빌로 규정한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일상에서 포착한 인간들의 낡아빠진 의식과 습관을 웃음으로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보드빌과 달리 결혼피로연에서는 우리가 왜 웃는지, 등장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웃음의 원인과 결과까지 생각하게 되는 풍자의 성격이 강한 웃음이 울려퍼지는 것이다.

 

 

 

 

결혼 피로연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에서는 피로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갓 결혼한 두 사람을 축하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후반부에서는 보험설계사 뉴닌이 데려온 레부노프-카라울로프의 등장으로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난다. 이렇게 나뉜 두 부분 가운데 전반부에서는 그리스인 드임바가 내뱉는 혀짤배기 러시아어와 산파 즈메유키나를 따라다니면서 노래해달라고 조르는 야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관객들의 흥미와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는 퇴역 해군중령인 레부노프-카라울로프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웃음의 원천이다. 그는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 피로연에 참석했지만, 그를 초대한 나스타샤 티모페예브나 등은 전혀 다른 계산을 하고 있다. 장군을 초대하여 피로연을 빛내려는 소시민들의 속악한 저의와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하려는 뉴닌의 얄팍한 상술이 레부노프-카라울로프의 일방적인 연설과 맞물리면서 결혼 피로연은 웃음과 풍자의 정점으로 치달린다. 러시아 연극 연구자인 베르드니코프의 지적은 상당히 의미 있다. “결혼 피로연에서는 시대에 뒤진 소시민의 장면들에 의하여 야기된 슬픈 음조들, 이 세계에서 인간의 모욕에 반대하는 직접적인 저항의 음조가 휘젓고 지나간다.” 체호프는 시대에 뒤진 어리석은 소시민들의 고립무원과 시대착오 및 사회 · 윤리적 파산 상태를 적나라하게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