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 '세 자매'
속물들과 우매한 대중이 득시글거리는 지방 소도시에 예쁘고 고상하며 지성적인 세 자매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작은 꿈이 있다.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꿈에 그리던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과 여기에 차폐된 채 영영 묶여있을 것인가. <세 자매>는 우리의 삶과 환경, 그리고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1899년 2월 8일 체호프는 네미로비치-단첸코에게 예술극장을 위한 희곡을 써보겠다는 의사를 알린다. 거의 한 해가 흐른 다음인 1900년 10월 16일 체호프는 고리키에게 희곡 집필이 끝났음을 알린다.
〈세 자매〉에서 체호프는 러시아의 지방도시에 거주하는 장군의 세 딸을 희곡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그가 겪은 어려움은 세 자매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개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똑같은 장군의 딸들이지만, 독특한 인간적인 면모를 가져야만 무대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 형상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우리는 벌써 그들의 차별성을 의상에서 알아본다. 맏딸 올가는 푸른색 교사 제복을 입고 있으며, 둘째 마샤는 마치 상복과도 같은 검은 옷을, 막내 이리나는 스무 살 청춘이 환하게 빛나는 흰색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푸른색은 지성을, 검정색은 죽음을, 흰색은 순결을 의미한다. 이들의 대비는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결코 약화되지 않는다. 군인이라는 사회적 환경은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금방 이해 가능하다. 러시아에서 졸병 같은 일반사병은 평민이나 농노들의 몫이었지만, 장교는 언제나 귀족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특권이자 의무 같은 것이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오직 장교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장군의 세 딸이 겪는 삶의 고독과 슬픔, 희망을 향한 몸부림과 그것의 지속적인 좌절과 절망이 만 4년 반 이상의 유장한 시간속에서 느릿하게 펼쳐진다.
1901년 1월 31일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세 자매〉의 초연이 개최되었다. 희곡은 비평계의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연극 관련 매체가 〈세 자매〉의 상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관객의 반응은 아주 달랐다. 몇 차례 공연이 끝난 다음 〈세 자매〉는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희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우리가 〈세 자매〉에서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것은 인간의 꿈과 열망이 주위 현실과 충돌하면서 어떤 불협화음과 파열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세 자매는 무식한 대중과 속물들이 들끓는 지방도시를 떠나 고향인 모스크바로 가려고 한다. 거기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 결혼하지 못한 올가는 결혼에 대해서, 창조적인 노동을 꿈꾸는 이리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마샤는 점차 망각되어 가는 모스크바에 대한 꿈을 드러내 보인다. 체호프는 첫 번째 장면부터 그들의 바람이 수포로 돌아갈 것임을 강력히 암시한다. 그들이 모스크바를 향한 열망을 말할 때마다 체부트이킨과 투젠바흐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식으로 응수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암시는 솔료느이 같은 등장인물의 대사에서도 시시때때로 흘러나온다.
모스크바는 세 자매가 처한 출구 없는 암울한 현실의 유일한 출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관객과 독자는 과연 그들이 모스크바에 갈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끝내 고향에 다시 가지 못한다. 마샤는 여전히 상복 같은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교사직을 싫어하는 올가는 교장이 되고 말았으며 사랑과 노동을 꿈꾸었던 이리나는 약혼자 투젠바흐를 잃게 된다. 그들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세 자매는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세 자매> 마지막 장면에서 올가는 동생들을 얼싸안은 채 말한다. “세월이 흘러 우리가 세상을 영원히 떠나면 사람들은 우리를 잊을 거야... 우리 얼굴도 목소리도. 그리고 우리가 몇 사람이었는지도 잊어버릴 거야. 하지만 우리의 고통은 우리 다음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변할 것이고, 지상에는 행복과 평화가 찾아올 거야.... 아, 동생들아.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살도록 하자!"
아무런 희망도 전망도 없어 보이는 막다른 골목에서도 그들은 삶의 의지를 놓지 않는다. 우리가 〈세 자매〉에서 반드시 읽어내야 할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