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안톤 체호프 '고니의 노래'

clint 2021. 3. 28. 08:00

 

 

 

이제는 너무도 늙어버린 희극배우 스베틀로비도프의 처절한 노래가 구슬픈 만가처럼 울려 퍼진다. 배우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45년을 살아온 지방 극단의 무명배우가 생의 끝자락에서 절절하게 풀어내는 인생의 슬픔과 비애가 캄캄한 한밤중의 연극 무대에서 꿈결처럼 이어진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과 인생, 배우와 극장의 관계를 돌이키게 하고, 종당에는 삶의 본원적인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칼하스리는 부제를 가진 단막극 <고니의 노래>1886년 집필된 단편소설 칼하스를 개작한 것이었다. <큰길에서>와 마찬가지로 체호프는 고니의 노래를 단막 드라마 습작으로 규정했다. 첫 번째 단막극과 마찬가지로 고니의 노래역시 습작의 성격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887114일 체호프는 소도시 보스크레센스크 지주 가문의 딸 마리야 키셀료바에게 편지를 보낸다. “4분의 1쪽 분량의 희곡을 썼습니다. 연기하는데 15분 내지 20분 정도 걸릴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희곡이지요. 지금 코르쉬 극장에서 일하는 유명한 다브이도프가 연기할 겁니다. 대개 큰 작품을 쓰는 것보다 소품을 쓰는 편이 훨씬 쉬워요. 이 희곡은 1시간 5분 만에 썼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니(천연기념물 201호로 지정되어 있는 겨울철새. 흔히 백조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백조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흰새라는 뜻이며, 일본어 번역투를 그대로 쓴 말이다.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차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는 우리말로 하면 고니의 호수로 바뀌어야 옳다.)는 죽을 때 딱 한 번 운다고 한다. 거기에 착안하여 체호프는 인생의 끄트머리를 살아가고 있는 노배우 바실리 스베틀로비도프의 한 서린 연극 인생을 들여다본다고니의 노래는 귀족 출신 배우 스베틀로비도프의 회상에 의지하여 진행된다. ‘배우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배우의 아내가 될 수는 없었던여인을 사랑했던 스베틀로비도프의 실패한 사랑 이야기가 회상의 골자다. 이 작품에서 체호프는 스베틀로비도프의 종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스산한 내면 풍경을 간결한 필치로 포착한다. 늙은 배우의 덧없이 사라져버린 세월과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이 처연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과 연극,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들끓는 사랑으로 그는 당당하다. 이렇게 모순되는 감정이 고니의 노래의 주조를 이룬다. 전반부에서는 지난날의 회한과 우수가, 후반부에는 희극배우 스베틀로비도프의 처절한 노래가 만가처럼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