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병일 '로봇상사'

clint 2021. 3. 15. 07:46

 

로봇상사는 많은 SF작품이 그리고 있는 우울한 미래와 맞닿아 있습니다. ‘별로 달라질 것이 없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201호와 301호라는 숫자로 통칭되는 두 남녀가 감옥 같은 사무실에서 쉼 없이 타이핑 노동을 합니다. 감시자인 매니저 로봇의 감시 속에서 글쟁이라는, 그나마 우아한(?) 생업으로 연명하며, 미래를 꿈꾸는 두 남녀. 로봇이 상사로 있어 더 좋을 것 같은 미래지만 결국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직장인의 비애와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몇 해 전 서울연극센터 홈페이지에서 신청한 공연 이벤트에 당첨되어 SF연극제라는 행사의 무대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작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SF장르물의 가능성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상상하고 고민해서 작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신선한 장르물,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습니다.

 

 

김병일

출근길이나, 화장실에서, 혹은 길을 걷다가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면 하루 종일 공상의 세계에 머물곤 합니다. 나이가 더 들어감이 떨어지기 전에, 아직 타다 남은 머릿속의 장작으로 불씨를 지피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위사람들이 따듯해지는, 그리고 공감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소극장에서 보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눈을 감고야 말았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얼마 전 산울림

소극장에서 관람하며 혼자서 엉뚱한 상상을 하며 끝까지 보고야 말았습니다. 우주의 작은 행성에 떨어져 조난 신호를 보내는 우주비행사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 공연을 다 보고 저처럼 엉뚱한 상상도 허락하는 여백이 많은 좋은 작품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