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수 '5차원'(대학생 2인극)
제19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순천향대학교 참가작
지나간 시간 속에서 우리가 자주 침잠하는 이유는 과거의 시간이 나의 발목을, 나의 설움을, 나의 미진한 그 모든 것들을 잡고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나 스스로 그것들 속에서 나오지 않고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빌어먹을 상황이, 그때 내게 닥쳤던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아쉬워한다. <5차원>에는 과거의 상처와 기억에 사로잡혀 오로지 과거를 위해서만 현재를 사는 과학자가 나온다. 그는 과거에 자신의 가족을 사고로 잃은 후 그 가슴 아픈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원인이 있었던 과거로 돌아가 가족을 구하고자 한다. 작가는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을 저울에 올려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잃어버린 과거와 획득할 수 있는 현재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만 <5차원>에서 다루는 과거가 기껏해야 “짜장면 먹을 걸 짬뽕 먹었네. 아이고 후회되네" 정도의 손실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를 다루고 있기에 그의 손실된 과거는 현재와 등가의 가치를 획득하며, 과거 회귀에 매달린 주인공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맹목적으로 과거 회귀에 빠져 있던 과학자를 구원해준 것은 결국 현재가 가진 활력이었다. 과학자에게 일상의 소중함과 삶에 활력을 다시 느끼게 해준 조수는 과학자가 지금, 여기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과학자의 연구 보조로 이 연구실에 배치되었으나 연구과제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고 사사건건 과학자의 무시와 불친절에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싹싹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과학자의 힐난에 가까운 질문에 넙죽넙죽 대답도 잘하는 넉살과 명랑함을 장착했다. 그의 삶의 태도는 연구 보조와 상관없는 사소한 청소, 심부름을 이행할 때의 모습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보조는 어떤 일을 하든 당장 하는 일에 가장 집중하며, 주변인들까지 그 긍정적인 인식에 동화되도록 한다. 바로 이 점이 과거에 박제된 과학자의 의식을 현재로 돌아오게 만드는 견인차가 되어준다. 과학자는 결국 가족을 잃은 슬픔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가 직면하는 오늘을 사는 것을 통해 극복되어야 함을 깨닫고, 과거로 갈 수 있음에도 과거로의 여행을 포기한다, 그 이후 진정한 그의 삶은 시작된다. <5차원>은 실존적 삶의 중요성을 말한 극의 주제를 희곡으로 전개해가기 위해 차원이동 가설을 제재로 활용하고 있다. 희곡 창작에서 메타포의 적용, 적절한 소재와 제재의 활용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희곡을 흥미롭고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차원이동 가설 연구에 몰두하는 상황을 풀어 가는 작가의 방식은 상당히 과학적이다. 특히 과학자와 조수가 ‘시공간의 곡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실험을 진행하는 장면은 작가가 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공부한 흔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점이 이 작품을 선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의 창작에 있어서 소재주의에 빠지는 것은 지양해야겠으나 드라마가 다루는 인간 삶의 영역이 결국 인간을 둘러싼 세계의 온갖 지식과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할 사항이다. 즉 제대로 공부하고 만든 희곡은 관객들을 스토리텔링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기반으로 한 지식의 장으로도 이끌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공부하고 만든 희곡이 참으로 반갑다.
작가의 말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후회되는 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후회되는 순간을 실제로 돌릴 수 있다면 어떨까? <5차원>은 이러한 발상에서부터 시작된 작품이다.
자신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인생 전부를 바치는 과학자의 이야기다.
간절한 미음은 사람의 행동을 명확하게 만들어 주지만, 때때로 중요한 것을 외면하게 한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일까? 나는 아직 찾지 못한 것 같다. 독자 분들도 이 작품을 통해, 함께 고민 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