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철수와 영희' (대학생 2인극)
제19회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서울예술대학교 참가작
이 작품은 작가가 언급했듯이 두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이 사회의 어떤 문제점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서사적 양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굳이 이 작품의 서사적 특징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통속드라마로만 치부되는 것에 대한 경계 때문이다. 즉, 이 작품은 두 남녀의 운명적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이별의 가치 그리고 이성에 대한 태도를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철수의 독백이 그것을 말해준다. 철수는 이 작품에서 배역과 내레이터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관객의 극적 몰입을 적절히 통제한다. 이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6장까지는 순천행 기차에서 만난 철수와 영희가 순천의 한 소극장에서 재회한 후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가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7장부터 9장까지는 서울에서 다시 밤을 보낸 두 사람이 나중에 만나 영희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결국 영희가 낙태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연극은 스토리 자체만 떼어놓고 본다면 통속적인 청춘 남녀의 그렇고 그런 연애담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 눈이 맞아 하룻밤의 정을 나누고 서울에 올라와 여자는 임신하고 결국은 헤어진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행동 동기와 이를 유발하는 의식의 내면 과정을 나름 면밀하게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남이 엿보인다.
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짧은 단편영화의 장면들을 정교하게 이어 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열차 안에서 부터 순천만과 낙안읍성, 그리고 서울 남산타워에 이르기까지 두 남녀의 동선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극적 재미를 더해 준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철수의 의식적 흐름이다. 철수의 독백을 통해 관객은 등장인물의 의식을 읽게 되고 나아가 그 기저에 깔린 쟁점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즉, 철수와 영희의 만남과 이별 과정에서 무엇이 그들의 의식과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지를 반문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작가가 언급한 대로 어떤 소재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풀어가는 나만의 방식이 더욱 중요하며 그것이야 말로 곧 새로운 것이라는 자신만의 독자적 발상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작가의 말
1001일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로 폭군을 멈추게 한 세헤라지데, 이야기의 힘은 사람을 뭉치게 할 수도 또는 흩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에피고넨의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어디서 봤던 것이고 들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며 진부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진부한 내용이나 형식일지라도 무대라는 공간은 배우를 통해 언제나 새로움을 창출해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를 생각해 냈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정착되지 않은 코치 시스템을 도입하여 배우만의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 작은 날갯짓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