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규연 '삼대'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세상은 힘들어지고 사람들은 각박해졌다. 함께 나누려는 마음보다 나만 살면 되겠다는 마음은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모두 안락사시킨다는 법안으로 이어졌다. 동민은 올해로 80번째 생일을 맞았고, 그의 아들 호희는 안락사 대상자가 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남몰래 거실과 이어지는 방공호를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전 부인의 방문으로 아버지와의 감정의 골을 푼 호희는 동만을 죽이기 위해 안락사 집행관으로 찾아온 아들 규범을 속이려고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삼대는 다 함께 내일을 맞을 수 있을까?
심사평 오경택· 연출가 임선옥· 평론가
101편의 응모작에 나타난 세상은 암울했다. 소재는 다양했지만, 현실을 비판하고 불합리, 불공정, 불안정, 부조리가 만연한 세상을 표면적으로 그리는 데 그친 작품이 다수를 차지했다. 기발한 상황 설정이 돋보이는 몇 작품이 있었으나 설정을 이끄는 캐릭터 구축이 미약했고, 어설픈 문제 제기와 감상적 마무리로 끝맺는 작품이 많았다. 본심에는 4편이 올랐다. ‘쇼윈도법’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시대의 청년이 부조금을 얻기 위해 신부 없는 결혼식을 치르려다 재판에 회부되고 장례까지 치르게 되는 과정을 판소리 형식을 차용해 전개한 해학미가 돋보였으나 급히 마무리되는 결말이 아쉬웠다. ’1022′는 정치인 가족을 중심으로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까지 이용하는 인간의 탐욕과 위선을 비판하며 안정적인 극 구성과 전개력을 보였지만 내용이 익숙했고 새로움이 없었다. ‘김창식이 오고 있다’는 로또 당첨을 둘러싼 삶의 민낯을 적나라하고 리얼하게 그려내며 비루하고 피폐한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엔 성공했지만 문제의식의 확장 없이 씁쓸함만 남겼다. 최종까지 논의가 집중된 ‘삼대’는 할아버지의 안락사를 집행하려는 손자와 막으려는 아들 삼대를 통해 섬뜩한 상황을 보여주며 현실의 문제를 제기했다. 상황 설정의 창의성과 각 인물의 딜레마가 사건 진행의 추진력을 적절히 제공해 돋보였다. 손자 캐릭터의 피상적 묘사와 예측 가능하고 진부한 결말이 아쉬웠지만 타 작품들보다 구성의 밀도감과 전반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판단하여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당선소감 - 임규연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인생은 걱정이 안 돼, 넌 뭐든 할 거 같아. 하지만 저는 그 뒤로 숱한 밤을 자기혐오에 허덕였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내야만 했나? 지금껏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나? 끝없는 공상에 묻혀 몸서리치던 밤마다, 나의 잠재력은 폐쇄된 내 안에 갇혀 영영 빛을 보지 못할 거라고 두려워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시간에 저는 모래성처럼 존재했습니다. 견고하지만 나약하고 거대하지만 허전한 채로, 눈물을 닦아낸 휴지 뭉텅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사람을 위로하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해도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잘 참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치고 부서져도 티 내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곤 했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하던 글을 쓰면서도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괜찮을 수 있었습니다. 우연처럼 만나게 된 수민, 세린, 미연, 희원은 오늘을 망설이던 제가 내일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소중한 친구 정원에게도 감사를 표합니다. 또 저에게 이 길이 어울린다고 하셨던 정일 선생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께 배웠던 것이 제 안에 보석처럼 남아 여전히 반짝거립니다. 저의 변덕을 이해하고 기다려주신 부모님과 동생, 고양이 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가족이 되어 기쁩니다. ‘작가’는 저의 하나뿐인 꿈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도서관에 틀어박혀 한 학기에 삼백 권의 책을 읽어낼 때도, 당선 소식을 들은 지금도 변함없이 같은 꿈을 꿉니다. 이번의 기쁨이 일회성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앞으로 더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2000년 출생
- 백석예술대 1학년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