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재단의 무료 병원, 602호의 붙박이 환자
최병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는 척추마비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움직일 수 있고
병원 바깥에는 차도 다니기 어려울 만큼의 눈이 쌓여 있다.
그리고 그는 연말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부금을 받는 데 일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띠고 있다.
인터뷰는 당장 코앞으로 닥쳐왔고
새로운 병원장 베드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당혹 해한다.
베드로는 최병호가 병원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던 것과
같은 병실의 정숙자, 이길례 환자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에 주목하고
정숙자와 이길례, 그들의 담당의인 닥터 리, 병실 키퍼인 김정연을 차례로 만나
최병호의 행적을 추적하는데…
과연,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최병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의사, 환자 등 7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연, 추억, 기억으로 변해버린 마음의 상처에 대한 것이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가슴 아픈 이별의 슬픔, 애끓는 가족애, 직장 생활의 고충 등을 들으며 베드로는 그런 그들과 함께 해온 최병호라는 사람에 대해 접근하게 된다.
세상을 향해 담을 쌓은 사람, 같은 병실의 환자들한테도 날 선 반응을 보인 이, 기댈 곳 하나 없던 이가 별안간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지에 대해 반문하며 베드로는 최병호가 깊이 감춰둔 사연을 향해 조금씩 다가선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김종욱 찾기>, <송산야화>에 이어 장유정 작가와 김혜성 콤비가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두 분의 데뷔 초기작으로 젊고 신선한 발상과 따뜻한 휴머니티가 녹아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06년 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극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사실 이 작품은 2003년 겨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연했던 <드레싱 해드릴까요?>를 수정, 보완한 작품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상처와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밝고 예쁘게 그려내고 있다.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한 극중극 형식으로 각 캐릭터들이 어떤 시련을 당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준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마법처럼 변하지는 않지만 그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전한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서로 상처를 받은 상황과 사정은 다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따뜻한 드라마와 음악으로 치유 받는 이야기이다. 기존의 소극장 창작뮤지컬들이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에 국한되었던 것과 달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는 병원장 베드로가 최병호를 찾는 과정을 추리 미스터리극 형식으로 보여준다. 2005년 초연을 시작으로 전문가와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12년에 이르도록 장기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총 36만명이 관람을 하며 대학로 대표 소극장 뮤지컬로 입지를 굳혔고 많은 뮤지션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갔다. 이 작품의 장기 흥행 비결은 나와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동질감과 함께 위로를 받는다는 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작가의 글 - 장유정
살아오면서 참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점은 진정 좋은 것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한히 기다리거나 혹은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좀더 연세드신 어르신들께는 송구하기 짝이 없으나 33년 동안의 삶에서 공짜로 얻거나 주운 것은 언제나 금세 빠져나가 버렸고(길에서 주운 돈은 늘 허무하게 쓰게 되는 것처럼). 아홉 고개 넘어가며 힘겹게 얻은 것만이 오래도록 곁에 남아 그 소중함을 자랑하곤 했다.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얻은 것이어서 오래도록 곁에 있는 것인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오래오래 빛을 잃지 않고 가슴속에 고이 간직되어 나를 지켜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 당신이잠든 사이>를 얻는 과정도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 대본을 쓸 때 혹독한 터널을 거의 허 우적대며 뚫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 후의 공연과정은 그보다는 쉬울 줄 알았다. 그러나 1분1초 공연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감은 깊어졌고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웠다. 매일매일 어금니를 꽉 깨물며 긴장을 견뎌야 했지만, 결국 첫 번째 화양연화를 얻었다. 두 번째 연애하는 심정으로 2차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첫 번째로 얻었던 화양연화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그 다음, 그 다음... 언제나 고달픈 여정 끝에 감사하게도 나는 8번의 화양연화를 얻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한때가 8번이라면 어폐가 있으나, 그 순간의 나는 적어도 이전의 나를 잊을 만큼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비록 욕심이 그 순간을 잠식할지라도. <오! 당신>이 인생보다 더욱 의아한 것은 왜 쉬워지질 않는가. 본질적인 의문이다. 음악적으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대수술을 감행하면서 이 과격함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7차팀 공연을 건너오면서 이미 스스로에게 익숙해진 배우들에게 음악적 변화에 걸맞는 장면 연출을 제안하고 새로운 역량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길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과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9차팀 배우들에게 잠재해 있던 역동적인 에너지는 더할 수 없이 작품을 힘있게 만들어 주었고, 앞서의 어떤 팀보다도 파워풀한 합창을 이끌어냈다. 작품 초반에 병원 사람들의 드라마를 짧게 보여줄 '그래요 지금 가요'와 전직 쇼걸 숙자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탱고, 삼바 댄스 장면이 이들의 역동성을 잘 표현하리라 생각되고 그 이후에 펼쳐질 최병호의 중요한 드라마에서는 보다 섬세해진 연기력이 장면을 뒷받침할 것이다. 섣불리 결론을 내서는 안되겠지만, 변이를 견뎌낸 만큼 새로워진 <오! 당신>이 만들어질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9번째 화양연화를 가져다줄 것을 믿는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채규 '장날' (1) | 2024.03.13 |
---|---|
차근호 '회수조' (1) | 2024.03.13 |
신경숙 원작 극본 고연옥 '엄마를 부탁해' (2) | 2024.03.12 |
최인석 '용마여 오라' (1) | 2024.03.11 |
지이선 '모범생들' (1) | 2024.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