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
서른 여섯의 명준, 수환, 종태는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떠올린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 무렵.. 명문 외고 3학년의 한 학급.
숨막히는 시험을 치르고 난 명준은 성적 비관으로
자살을 시도하나 어이없이 실패를 한 후
수환과 함께 컨닝 시도를 모의하고
운동선수 출신인 종태까지 합세한다.
그런데 반장 민영이 시험문제지를 아예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계획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으려 하는데....
이 사건은 두 명에서 세 명, 네 명,
그리고 반 전체로 일파만파 커져간다.
결국 그들의 컨닝은 서로의 욕망의 충돌에 의해 발각되고
실패하지만, 그들은 내부적 합의로 한 친구를 희생양 삼아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사회적 엘리트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오늘, 민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이 작품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목고 고3 학생들을 통해 이들이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욕망이
과연 그들 스스로의 것인지,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정당하게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다.
작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열하고 잔혹한 현실을 관객의 면전에 꺼내 놓는다. 그렇기에 참 불편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무폭력의 폭력'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비열하다 못해 섬뜩하다. 작품은 성적이 절대적 행복의 기준이라는 오늘날 교육 현실의 부정적인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상위 1%를 위한 음모, 왕따, 폭행 그리고 비관 자살 등 엄연히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련의 잔혹한 일들은 희곡적 요소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공포심마저 들 정도다. 이들에게 모범생이란 정직하고 성실한 것들이 아닌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1등급이 되어야만 하는 비열한 것들의 참상이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상위 1%의 삶을 꿈꾸는 명준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성공하길 바란다. 우유부단한 수환 역시 눈에 보이는 사회적 성공만이 최고의 삶이라 여긴다. 이미 모범생인 두 인물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부정행위를 계획하고, 일이 틀어지자 종태를 제물로 삼는다. 양심을 저버린 채 권력과 야망을 좇는 두 인물의 모습은 그저 물질적인 성공만을 위해 내달리는 우리의 민낯을 보는 듯 속이 쓰리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인간 심리의 내밀한 보고서와 같다. 엘리트의 삶을 위해 약자를 밟고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던 명준과 수환의 비열한 모습은 성인이 돼서도 변함이 없다. 출세지향 주의적인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상위 0.3% 재력에 잘나가는 검사가 된 민영에게 잘 보이려고 결혼식장을 찾은 두 인물의 모습이 씁쓸한 이유다.
‘모범생들’의 지이선 작가
지 작가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전교 1등이었던 반장과 그 반장과 사이가 안 좋던 뺀질뺀질한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순간, 마음속으로 반장보다 뺀질뺀질한 친구를 더 응원했다. “여자 둘이 싸우는데 아무도 안 말리더라고요. 아마 친구들도 암묵적으론 반장이 이기지 않길 바랐을 거예요. 반장은 혼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시험을 치르고 난 후 친구들은 그에게 수능이 필요없는 학교에 갈 거면 언어 영역 시험을 못 보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를 들으며 섭섭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모티브는 되지 않았지만 그의 개인적 경험과 지인의 경험담, 사례 등이 작품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모범생들’은 관객들이 듣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 전하진 않는다. 다만 극을 통해 현상을 보여주기만 할 뿐이다. 지 작가는 “예전에 비해 연극작품들이 보다 비유적으로 변했다”며 “직접 배우 입에서 관객들이 원하는 대사를 뱉고 표현하기보다는 그냥 보여주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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