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은실 '황금 연못으로 가는 길'

clint 2023. 11. 7. 19:33

 

 

 

<황금연못으로 가는 길> 6.25의 상처를 아직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금순과 기수 그리고 치매에 걸린 금순의 부양을 둘러싼 가족 개개인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진숙은 5년이 넘도록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금순)와 집안일에 무심한 시아버지(기수), 퉁명스런 남편(영민) 사춘기의 자녀들과 함께 사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이다. 영민은 원래 차남이지만 미국으로 이민간 장남(영훈)을 대신해 부모님을 모시고 있다.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지만 진숙은 정성껏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간다. 그러나 금순의 노망은 점점 심해가고 아이들조차 이런 조부모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쪼들리는 살림과 시어머니에 대한 간호 때문에 자유시간 한번 가져본 적 없는 진숙의 불만은 커져간다. 한편, 두 아이들의 시험 공부 때문에 별장에 가 있게 된 금순과 기수는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지만 금순은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들 속에서 6.25전쟁때 성 폭행당한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때 근 10년 만에 영훈이 귀국한다. 영훈은 금순의 모습에 가슴 아파하고 영민과 진숙 역시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부모의 부양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게 되는데......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모두 다 한 가족임을 깨닫고 서로 화해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사랑하는 부인의 치매를 지켜봐야 했던 기수는 남은 가족들을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

 

 

 

 

이 작품에서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중심으로 하여, 황혼기 노부부의 애정과 의무감으로 시부모를 부양하며 겪어야 하는 며느리의 피해의식. 6.25전쟁의 산물로서 일어난 아버지가 다른 두 아들의 정신적인 갈등, 그리고 이해보다는 현실생활을 앞세우는 손자, 손녀와의 갈등을 가족이라는 가장 밀접한 테두리 속에 놓고 6.25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무거운 과거를 배경으로 삼아 현실감과 서정성을 속도감과 기교로서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을 맺는 노부부의 극단적인 자살은 우리사회의 "노인문제' 라는 명제를 강도 있게 제시하는 한편, 이제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세대들에게 "노인복지"는 단순한 생활면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그 세대의 정서적 요소와 세심하고 인간적인 배려로써 좀 더 밀도 있게 접근해야 된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나 어머니와의 관계를 현실감 넘치고 강도 있는 줄거리로 풀어나간 이 작품은 노인문제의 실체와 본질을 연령과 계층을 뛰어넘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생각하는 연극으로써 받아들이게 한다.

 

 

작가의 글 - 강은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다니던 대학을 뛰쳐나와 다시 공부를 시작했던 어느 컴컴한 독서실에서 가끔씩 난 막연히 뭔가를 쓰곤 했었다. 시도 소설도 아닌 누군가와의 대화를. 맨 처음 시작은 그랬다. 그 후 셰익스피어와 유진 오닐과 아서 밀러의 희곡들을 접하면서 난 희곡이란 장르에 흠뻑 취해 버렸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 또한 그들처럼 좋은 작품을 쓰고 싶은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이제 처음으로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보여줄 것도 없으면서 감히 사람들에게 발가벗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솔직히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이번 공연이 내게는 정말 행운이었음을 꼭 밝히고 싶다. 희곡은 작가 혼자만의 작품일 수 있지만 연극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여러 사람들의 열정과 하나되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종합예술임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작품인 데도 불구하고 순전히 창작극에 대한 애정으로 작품공연을 결정한 대표님과 미진한 점을 보완하느라 꽤나 고생하신 연출가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여름내내 연습에 최선을 다했던 배우들의 안정에 존경과 감사를 그리고 묵묵히 그들을 도와준 스태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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