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아고타 크리스토프 '엘리베이터 열쇠'

clint 2023. 6. 21. 07:25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여인이 남편을 살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조금 강도 높은 페미니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목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니 극의 내부에 깔려 있는 다양한 상징이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뜻하는 프랑스어인 ascenseur '올라간다'는 라틴어 동사 ascendere에서 왔다. 이 말은 ascension을 연상시킨다. ascension은 예수나 마리아가 승천한다는 뜻이며, 대문자로Ascension은 예수 승천일을 말한다. 그렇다면 열쇠는 천국으로 가는 열쇠일 것이다. 예수는 이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긴다. 그래서 베드로의 후예들인 교황의 상징이 바로 열쇠이다. 하지만 통속적 인간은 엘리베이터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 우연이지만 오르가슴orgasm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말 발음으로도 올라간다는 느낌이 든다. 성적 흥분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영어인 elevate도 느낌이 비슷하다. 프로이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열쇠가 뭘 상징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보통 도상학에서 열쇠로 문을 여는 것은 성행위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희곡에서 '여인'은 남편을 기다리다가 집을 나선다. 그리고 숲에서 수렵 감독관을 만난다. 여인이 감독관을 만난 이야기를 하자 남편은 열쇠를 빼앗는다. 그 이후로 여인은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것처럼 다리가 간지럽다고 호소한다. 여기서 다리는 촉감을 상징하고 간지러움은 성욕을 상징한다. 하지만 열쇠를 빼앗긴 여인은 더 이상 밖에 나갈 수가 없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인간 욕망의 도구이다. 출세를 향한 욕망이든 돈을 향한 욕망이든, 그다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도시화된 이 세상을 보자. 아파트 짓겠다고 산을 밀어버리고 거주자를 아무렇지 않게 쫓아내는 욕망 쯤은 쉽게 만날 수 있다. 여인이 다리가 간지럽다고 호소하자 건축가 남편은 외과의사 친구를 불러 아내의 다리를 마비시킨다. 소음이 들린다고 하니 신경을 죽여서 청력을 없앤다. 도시의 불빛이 방해된다며 눈의 신경을 죽여 앞을 못 보게 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만 메스로 도려내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자행하는 현실에 대한 비유이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목소리를 빼앗으려 할 때, 여인은 저항한다. 듣기 싫다고 목소리를 빼앗으려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이다이 작품은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억압받은 여성을 대변하는 페미니즘의 시선도, 토목 건축업자들에 놀아나 도시화되면서 자연을 빼앗긴 것을 비판하는 환경운동의 색깔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난 도시 빈민의 목소리도 깔려 있다.

 

  

1990년 샤를 조리Charles Joris의 연출로 포퓰레 로망 극단에서 초연하고, ‘프랑스-퀼튀르 라디오에서 방송하였다. 1994년 블라이 페스티벌Festival de Blaye에서 트로와의 프레텍스트 에코 극단에 의해 공연된 뒤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 등에서 수차례 무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