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승원 '인방갤'

clint 2020. 1. 11. 20:28

 

 

 

이야기도 스타일도 제 각각인 BJ들은 오늘도 실시간 방송 중.. 연극 <인방갤> (인터넷 방송 갤러리의 줄임말)은 인터넷 개인방송 BJ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최고 인기 BJ, 많은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섹시 BJ,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방송을 시작한 트랜스젠더 BJ, 주적인 북한으로부터 사랑하는 내 나라를 어떻게든 지켜내고 싶은 애국보수 BJ , 이야기도 스타일도 제 각각인 인물들이 방송을 한다. 시청자들의 모욕적인 발언도, 성희롱도 능숙하게 웃어넘기고, 도를 넘어선 요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엄청난 재력과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그들은 누구보다 쉽게 산다고 믿고 있다. 그들을 향한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감사하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일한다. ()문화로 자리 잡은 인터넷 방송, ‘소통소비사이 그 어딘가..??

 

 

 

 

 

실시간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인터넷 방송,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미래의 소통 방식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작품은 이를 비웃듯 인터넷 방송의 민낯을 무대 위에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작품 안에서 BJ와 시청자는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한다. BJ들은 시종일관 웃는 낯으로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말들을 쏟아내고, 시청자들은 그들을 평가하고, 응원하고, 조롱한다. 그 사이에는 별 사탕이라는 예쁘장한 단어로 포장된 돈이 오고 간다.? <인방갤>소통소비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통하여 신문화로 자리 잡은 인터넷 방송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작품은 누구에게도 섣불리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거나 연민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그저 인터넷 방송 갤러리에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오는 자극적인 가십들을 날 것 그대로 무대 위에 풀어놓는다. 극중 인물들의 속사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방송 중인 BJ로서만 존재한다. 하지만 방송(연극)을 시청(관람)할수록 그들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 삶의 고단함 등이 섬세하게 전해져 온다. 비로소 컨텐츠 안에서만 존재하던 BJ는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한 인간으로, 유치하고 자극적이기만 했던 그들의 방송은 평범한 삶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별 사탕, 건빵, 의첸, 열혈, 찐텐, 어그로, 블랙, 주작 방송....

이 낯선 단어들은 인터넷 방송 은어들이다. '별 사탕'은 인터넷 화폐를, '어그로'는 상대를 도발해 관심을 끄는 행위를, '찐텐'은 진짜를 뜻한다. '주작 방송'은 조작 방송을 지칭하는 용어다. 1인 미디어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유튜브의 유튜버나 크리에이터, 아프리카TVBJ (Broadcasting Jockey) 등 동영상 창작자들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타급 유투버나 BJ는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부를 누리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거친 욕설과 자극적인 가십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의 민낯과 함께 별 사탕 (자본)에 휘둘리는 BJ들의 이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청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최고 인기 BJ 철호, 남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섹시 BJ 미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 방송을 시작한 트랜스젠더 BJ 프림,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체를 파헤치는 극우 애국주의자 BJ 육만원, 성인 인터넷 방송 '핑크 TV' 출신의 VJ 밀크 등 다양한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인터넷 방송의 실태를 날 것 그대로 펼쳐놓는다. "회장님 별 사탕 1000! 의첸(의상 체인지) 뭐로 갈까요?" - BJ 미라

'의첸'은 별 사탕을 준 회원의 요구에 따라 노출 있는 의상으로 바꿔 입는 것을 뜻한다. BJ들은 시청자(구독자)들의 모욕적인 발언도, 성희롱도 능숙하게 웃어넘기고, 도를 넘어선 비윤리적 요구도 마다하지 않는다. 인터넷 방송계의 '철통령'으로 불리는 억대 연봉 BJ 철호가 한밤중에 안방에서 자는 딸을 깨우라는 회원의 무리한 요구를 따르는 모습은 '웃픈' 장면이다. 시청자들이 뿌리는 별사탕(인터넷 화폐)에 울고 웃는, 급기야 심신이 멍들어가는 BJ들의 모습은 자본의 횡포 속 비인간화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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