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전옥주 '영혼의 소리'

clint 2020. 1. 8. 21:08

 

 

 

영혼의 소리는 한 여성의 평생을 건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바는 징소리라는 음악이다. 그리고 이 음악이자 소리가 환기하는 세계는 징소리 할머니라고 불린 소라의 사랑의 세계이기도 하다. <영혼의 소리는 구상에서 탄생까지 작가로서는 꽤 오랜 시간의 공을 들인 작품으로 보인다. 작품의 소재를 얻은 시기는 7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소양강댐 공사로 물에 잠긴 마을을 보면서 구상하게 된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는 두 겹의 시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195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중반까지 소라의 일생이 중심으로 그려지는 액자 안의 시간이 있고, 그것을 둘러싼 1990년대 말의 외겹의 시간이 있다. 외겹의 시간인 1990년대 말에 소라의 삶과 예술을 그리고 있는 액자 안이 재조명되는 형식이다. “소라는 조상 2대가 진사를 지낸 정달수의 막내딸로 광대를 따라 집을 나갔다가 애 둘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극이 시작된다. 아버지 정달수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모진 시련을 겪으면서도 소라는 서서히 마을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아들 병수를 훌륭하게 키워낸다. 마을 공동체의 삶에 뿌리를 내리기위해 남다른 노력을 경주하는 모습과 어머니로서의 삶이 묘사되는 동안, “소라가 징을 드는 예인으로서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외겹의 시간으로 넘어와서, 액자 안의 시간이 회고되는 동안 소라의 징소리는 신의 소리라고 칭송될 만큼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설정은 일면 설득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소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층위의 삶이 그만큼 서로 충돌과 모순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광대를 따라 집을 나간 과거의 소라”, 농부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사는 현재의 소라그리고 외겹의 시간에서 징소리 예인으로서 추대 받는 소라" 여성이자 예인인 소라의 정체성을 이루는 이러한 다양한 층위가 애초에 충돌 · 모순적인 국면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징소리라는 청각적 기호가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고, 예술과 노동의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의미론적 구심 역할을 수행한다. 가뭄으로 마을이 황폐해지지, 정 달수를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수로를 만들기로 하는데, 이 징소리는 분열된 마을의 인심을 통합하게 해준다. 또한 광대 따라 집을 나갔던 과거의 소라가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되고 받아들여지는 화해의 순간을 여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는 과거와 현재, 노동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가 통합되는 순간이며, 이 순간을 위해 소라의 삶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징소리가 개인과 사회의 통합의 순간을 여는 소리라면 다른 징소리는 사랑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예술가의 기원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소라는 남편을 앓고 나서야 남편이 쳤던 징을 치기 시작했다. 이때의 징소리는 소라가 사랑의 부재와 상실을 극복할 수 있게 한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영혼이나 사랑은 음악의 속성과 똑같이 닮았다. 음악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듯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음악이 공간을 변화시킨다. 음악은 좀 전에 들렸지만 이윽고 사라지는, 그 어떤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사라진 음악이라고 해서 음악이 아니었을까. 음악은 물질적 · 정신적 실체였음에 분명하다. 사랑도 그러하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사랑이 자아의 폐쇄성을 부수고,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영혼의 소리를 통해서 보는 것은, 시간의 단절을 넘어서 사랑의 순간이자 음악의 순간을 되살리려는 작가의 집념이다. 글쓰기의 모든 우회로를 지나서 작가가 도달하려는 길은 황홀한 생의 감각을 환기시켜주는 그 어느 곳이었을 것이다. 그 중심에 음악의 순간과도 같은 연극의 무대가 있지 않았을까

 

전옥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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