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1등이 되도록 교육받고 자란 열아홉 살 태수는 어느 날 멋진 댄서가 되겠다고 부모에게 말한다. 부모와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자 태수는 가족의 품을 떠나 함께 춤추는 사랑하는 연인 미연을 만나 자신의 꿈을 키워간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괴로워하는 태수.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그러자 주인공의 친구들까지 몰려와 함께 밤새 춤추고...
이를 알게 된 다른 교인들은 이 불량배들이 신성한 교회 안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내쫓는다.
그러나 알고 보니 태수는 세상의 그 무엇에서도 간섭을 받을 수 없는 새벽에 어머니의 병환을 낮게 해달라는 100일 기도를 일반적인 기도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춤을 추는 것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가장 대중적인 힙합을 통해 교회가 보듬어야 할 계층에 대해 묻고 있다. 가정과 교회라는 극의 설정 안에서 어른들의 이기적인 사랑 관을 확대시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하고 있다. 또 인형을 극 중간에 등장시켜 편견에 차있는 청소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뷰
작가 김성수는 “이 뮤지컬을 통해 기독교와 대중문화,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불협화음 속에서 화해를 이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극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궁극적인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사랑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하나님의 사랑... 이번 연극에서는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기준이나 경험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정죄하는, 가식적 인간들의 거짓된 사랑과 그와 반대되는 진정한 사랑을 대비시키고자 했습니다.
-극단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그 성격이 어떤 것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극단 '시심'은 예술영역 전반에 걸쳐서 영적인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교두보로써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하며 출발했고, '뮤지컬로 만드는 예수 공동체'를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뮤지컬 형식의 공연작품 생산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뮤지컬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죠. 지난 2000년 7월에 첫 모임을 가졌는데, 당시에는 한주에 한번 찬양예배를 중심으로 모였고, 2000년 말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난 2001년 6월 29일부터 3일간 쇼케이스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드렸죠.

-이번 연극을 굳이 '힙합'을 코드로 한 뮤지컬로서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힙합은 자유이며 평등입니다. 힙합은 미국 할렘의 흑인들로부터 출발한 문화로, 가난하고 소외된 그들이, 자기 표현을 위해 고안해 낸 여러 형식들(대표적으로는 랩과 브레이킹, DJing, 그래피티 등)의 총합이죠. 따라서 힙합은 그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그러한 측면에서 더욱 서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힙합은 하나님의 공평하신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형식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힙합은 한국에 수용되면서 여러가지 오해에 둘러쌓이게 됐어요. 그 이유는 첫째, 장사꾼들이 먼저 힙합을 상업적 형태로 수용하면서 그 정신은 빼고 형식만이(그것도 왜곡되게) 전부인 것처럼 선전했기 때문이고 둘째, 정신에 대한 관심은 없이 눈과 귀만 발달한 일부 매니아들이 원조 힙합 논쟁을 하면서 실제 본고장에서는 있지도 않은 고도의 장르화, 개념화를 통해 또 다른 마녀사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과 고급문화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기성 세대들의 백인 사대주의 때문입니다. 이들은 백인들의 문화는 고급문화이고 그렇지 않은 문화는 모두 사탄의 문화인 것처럼 매도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힙합이 거칠고 공격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절박하고 처절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의 노동문화가 그러하듯 말이죠. 우리 청소년들이 힙합에 열광하는 이유 역시 힙합에 담겨진 정신이 그만큼 절박하고 처절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혼에 흔들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청소년들의 이야기, 특히 기성 세대들의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하기 위해서 난 당연히 힙합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이 사회의 흑인이기 때문이며, 그 흑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혐오스럽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힙합'이 극중 주인공 태수에게 있어서는 '기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의미 깊게 다가왔습니다. 연극 안에는 교회안의 굳어진 제도와 현실에 대한 비판이 묻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한국의 교회는 죽어있고 예배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은혜와 사랑은 메말라 있고, 성결이란 이름의 정죄와 축복이란 이름의 이기주의만 남아있어요. 기업도 세습이 되는 것을 비판하는 시대인데 교회가 세습되고, 헌금은 자식의 사업자금이나, 교회, 사택의 건축자금, 사역자의 차량 구입비나 유지비로 너무 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자, 섬기는 자가 되라 가르치는 곳은 점점 비어가고, 남의 우두머리가 되고, 경영자가 되라 가르치는 곳에는 청년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선교나 전도란 이름으로 특정 시대에 개발된 다분히 사대주의적인 교리를 강요할 뿐, 이 천박한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죽어 가는 이웃에게는 그저 연말의 성금 몇 푼, 구색 맞추 기용 기도 몇 번, 눈물 한 두 방울로 때우려 하죠. 이정도면 다행이죠. 오히려 자신을 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한푼어치도 못되는 교리 논쟁으로 돌을 던지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는 죽어있습니다. 거룩한 표정 뒤에 온갖 사회악이 들끓고,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닮아가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쩌면 이 사회와도 그렇게 닮아 있는지, 우리 가정들과도 어찌나 닮아 있는지 모릅니다. 이번 연극에서는 한국의 가정, 사회, 교회를 "강요와 축출"이란 행위로 동일시 합니다. 우리가 이번 연극을 만들면서 발견한 사실은, 자신의 사랑(기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가차없이 "축출"이란 폭력을 행사함으로 자신의 이득을 구현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모습을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서 동일하게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분리주의의 당연한 결과물이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대적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대안은 연극 안에서도 드러나지만, 사랑으로 하나되는 공동체입니다. 혈연과 성별, 이기심과 기득권 등 그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공동체적인 삶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크리스찬 문화 뿐 아니라 일반 문화에서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중문화의 현지에서 활동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크리스찬 문화는 어떠한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기독교 문화라는 벽을 쌓아 놓고 그 안에서 조악한 문화 상품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경쟁력이 없어지고, 늘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하게 되는거죠. 그 벽이 없어져 버리면 이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마치 80년대의 민중가요처럼 말이죠. 이들 중 일부는 흔히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서 세상의 형식에 하나님의 내용을 집어넣으면 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결국 조악한 잡종을 양산하구요... 문화 사역이란 말을 함부로 쓰는 것도 코메디입니다. 선교나 전도란 꼬리표를 함부로 다는 것 역시 코메디구요. 자신이 사역자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선교를 한다고 느끼며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마치 자신이 하는 일만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착각하거나, 기독교 교리를 작품 안에 무조건 정제하지 않고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작품을 선교나 전도의 단순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것 역시 자멸의 지름길입니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속으로는 장사를 하면서 겉으로는 사역을 한답시고 떠들고 다니는 사기꾼들입니다.
-모든 기독교 문화사역이 어려움 가운데 있듯이 기독교 연극 역시 힘든 현실에 처해 있는데, 김 연출가님께서 보시기에 한국 기독교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더 나아가 발전할 수 있는 활로를 어디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잘 만들어야 합니다. 대학로의 어떤 연극보다 뛰어나고 볼만한 연극을 만들어야 해요. 이는 교리의 단순한 대입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충분한 전문성과 깊이있는 사유, 폭넓은 경험, 그리고 꾸준한 하나님과의 대화가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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