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조병 '아라홍련'

clint 2019. 12. 10. 11:46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면, 해발 139.4미터 조남산 정상부에 있는 성산산성에서 사람들이 삽으로 땅을 파고 솔로 흙을 훑고 바닥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있다. 문화재발굴 팀의 연구원들이다. 주인공은 김현수 수석이다. 유적연구만이 삶인 사람이다. 그래서 늦도록 결혼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떼를 쓰듯 결혼해달라며 쫓아다니는 이가 있다. 팀장 박규승이다. 그는 다른 곳에서 좌천되듯 이곳으로 발령받아온 연구원이다. 박규승, 말이 성산산성 발굴 팀의 팀장이지 그의 행동을 보면 연구라든지, 발굴이라든지 역사적 가치를 찾아내는 데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김현수 수석을 따라다니며 사랑을 구애하는 홀아비쯤으로 비친다. 그래서 그의 역할은 극에서 웃음의 감초다. ‘튼튼한 꽃대가 올라와서 푸른 하늘을 개화하는 씨앗을 찾아주세요.’ 발굴팀에게 던져진 화두다. 아니 어쩌면 김현수 수석에게 던져진 화두일 수도 있다. 과연 그것이 무슨 뜻일까? 한 연구원이 이번 발굴의 의미를 인간의 달 착륙에 비유하자 김현수 수석이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아주 멋진 대사를 내뱉는다. “그때는 지상의 빛이 우주로 발걸음한 것이지만 지금은 지상의 빛이 역사로 발걸음 할 때다.” 그러고는 바로 배를 움켜쥐는 김현수. 그에게 뭔가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 사무실에 들어간 김현수은 꿈을 꾼다. 그 사이 발굴현장엔 비가 내리고 번개에 천둥까지. 연구원들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다. 그런 팀원들에게 파라오의 저주가 내렸다며 놀리는 박 팀장. 김현수은 꿈속에서 아라 공주의 부탁을 듣게 된다. 씨앗을 찾아달라는 부탁이다. 그러면 천년 만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달려! 달려! 나는 아라국의 공주다. 달려! 나라를 구해야 된다.” 김현수의 잠꼬대다. 벌떡 일어나 자신의 잠꼬대에 자신이 놀라지만 최근 그에게 이러한 현장이 잦다. 꿈에도 생시에도 자꾸 헛것이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차우영 연구원에게도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둘은 늘 붙어 다니며 조사하고 있다.

 

 

 

 

 

팀장은 그게 늘 꼴불견이다. 혹시 김현수이 연하의 차우영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질투를 한다. “? 우영이가 귀라도 깨물어주길 바라는 기요?”

김현수이 차우영과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항변하자 그제야 야릇한 미소를 띠며 둘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나는 퇴근합니다.”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암전.

그리고 자욱이 깔리는 안개. 지팡이를 든 사람과 서성이는 사람들. 분위기만 봐도 오랜 과거의 모습이다. 뭔가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읽힌다. 하늘에서 수장이 내려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멀리 빛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웅성댄다. 아주 진지한 분위기다.

지팡이를 든 사람과 마을 사람들은 허리를 숙여 수장을 맞이하려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팡이를 든 사람, 사실 팀장이 그다. 그가 과거와 현재를 동시 현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김현수의 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규승은 말한다. “저건 우파오라고 한다. 요새 사람들은 아마도 UFO라고 할 것이다.”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듯 뿌려진 개그이지만 짧은 웃음의 여운은 길다. 과거의 환영은 UFO(?)를 타고 나타난 수장의 손에 뭔가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모두 놀라는 모습에서 끝이 난다. 다시 발굴현장. 우영이 땅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뭔가를 발견한 것이다. 김현수이 달려가 살핀다. 연꽃 씨다. 그는 확신한다. 젓가락으로 꽃씨를 수습하고 사무실로 온다. 대단한 뭔가를 발견했다는 들뜬 분위기다. “쪼매난 그기 뭐라꼬! 아이구 참.” 연구원들의 설명을 한참 듣던 팀장은 서서히 동공이 열리면서 놀라기 시작한다. 그 역시 엄청난 뭔가를 발굴했다는 기분에 들뜬다. 꽃씨가 언제 생긴 것인지를 알려면 탄소연대측정을 해야 한다. 팀장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모두 자기 공인 양 떠벌인다. 그러는 사이에 김현수과 차우영이 사라진다. 다시 무대에 안개가 깔리고 으스스한 분위기라 연출된다. 칼을 허리에 찬 무사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검술을 선보인다. 전쟁 상황을 묘사한 것이겠지만 단 두 사람이 홀로 검술을 펼치고 대나무를 베는 시연으론 묘사가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암전이 되었다가 무대가 밝아지면, 역시 옛날 분위기다.

신라 왕자 우영에게 아라국 현수공주가 찾아왔다. 패망한 아라가야국의 공주가 목숨을 걸고 신라의 왕자를 찾아온 것은 연꽃 씨앗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연꽃은 군주의 꽃이라 하고 공주는 백성의 꽃이라고 하며 옥신각신한다. 서로 칼을 부딪치며 논쟁을 벌인다. 공주가 연꽃이 아라가야에 뿌리를 내렸으므로 보호해야 한다지만 왕자는 아라국이 멸망했으므로 뿌리가 뽑혔으니 보호해서 무엇하겠느냐고 한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팀장이 나타난다. “봐라, 봐라!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가?”

팀장은 우영에게 다가가 김현수과 함께 어울린 것을 질투하며 나무라는데, 평소 말 한마디 없던 차우영이 말을 한다. “니는 일 안 하고 뭐하노? 빨리빨리 해라!”

 

 

 

 

 

그러자 얼떨결에 팀장이 일을 한다. 그러다가 우영을 보고는 , 말하나?”하고 묻고 우영은 ? 내가 말하고 있네.”하고는 퇴장한다.

다시 현대. 그런데 고대가 꿈으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종종 분간이 안 되기도 하고 섞이기도 한다. 어쨌든 탄소연대측정 결과가 나왔다. 700년 된 것이란다. 아라가야 시대의 것으로 잔뜩 기대했던 발굴팀은 낙담하는 분위기다. 아라가야는 1500년 전. 800년의 틈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라에 복속된 아라국. 하지만, 홍련은 역대 아라국 공주의 관리로 보호되어 왔다. 그런데 신라 역시 고려에 복속되면서 성산산성을 축조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 아라 홍련 연못이 있는데 고려병사들의 감시로 씨앗을 채취할 수가 없다. 공주는 왕자에게 씨앗을 채취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기울어진 신라의 왕자에게 그러한 힘은 이미 사라졌다.

결국 연못 위에 성벽이 쌓이고 아라 홍련은 땅속 깊숙이 칠흑의 어둠 속으로 매장되어 버리고 만다. 오히려 이것이 잘 된 일이 되었다. 아라 홍련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 병사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왕자와 공주는 자리를 피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무사로 등장한 팀장이 여긴 자기가 맡을 테니 빨리 대피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꿈을 깬 듯. 현실로 돌아온 김현수가 말한다. “이거, 우리가 왕자하고 공주 아니었나?”

이로써 탄소연대 700년 아라 홍련의 비밀이 해결되었다. 그렇게 아라 홍련은 언론에 공개되고 성산산성 발굴 팀의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아라홍련은 다시금 1500년 전 아라국 향기를 담은 아름다운 봉오리를 틔우게 되었다.

극은 땅울림으로 인식되었던 풍물 한마당으로 막을 내린다.

 

 

 

 

윤조병 선생은 1962년 영화잡지에 시나리오 휴전일기가 입선되고 67년 국립극장 장막 희곡 공모에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농토’ ‘모닥불 아침 이슬’ ‘초승에서 그믐까지등 많은 작품을 썼으며 전국연극제 대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이 있다.

 

- 어떻게 함안의 콘텐츠인 아라홍련을 극작하게 되셨는지요?

“3년 전 연극제 심사하러 왔을 때였어요. 그때 우연히 아라 홍련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아주 인상 깊은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이걸 연극으로 만들어 봐야겠다, 생각을 했고 2년 동안 현장답사도 여러 차례 왔어요. 관련 자료와 논문도 수없이 분석하고 살펴보면서 희곡을 만들었어요.”

 

- 이렇게 지역 콘텐츠를 무대 작품화하는 게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라 홍련은 함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거예요. 이건 대단한 거예요. 이렇게 특화된 콘텐츠를 예술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딴 데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봐야죠.”

 

- 무대는 선생님께서 상상하신 것과 좀 어떤가요?

무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으로 꾸미고 사무실도 전혀 다른 차원의 현대적 분위기가 많이 풍기도록 했으면 좋았겠다 싶긴 해요. 무대를 고정화하지 말고 극의 배경에 맞춰 변화가 가능하도록 기능성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죠. 그러려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들 테고. 이 정도로도 작품의 전체 분위기를 나타내는 데는 무리 없이 잘 만든 것 같아요.”

 

- 예산 문제는 아무래도 지역 예술계의 한계인 것 같아요.

함안 군수께서도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고 공무원들도 많이 도와주려 하더군요. 그런데 몸은 이미 여기에 와 있는데 예산이 따라오지 않으니까 사실 힘이 드는 거죠.”

 

- 이번 아라홍련 공연을 계기로 지역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리라 봅니다.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아라홍련도 계속 다듬어나가야죠. 더욱 완성도를 높여 이 연극이 여기저기 초청을 받아 공연하게 되면 함안의 고유 콘텐츠인 아라홍련이 널리 알려지게 되겠죠. 이것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다른 문화 콘텐츠와 연결되어 시너지효과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조병 '황진이, 가능의 캐릭터'  (1) 2019.12.11
김지원 '태통'  (1) 2019.12.10
성준기 '장미가 어찌 곱기만 하다더냐'  (1) 2019.12.09
윤미현 '철수의 난'  (1) 2019.12.08
박해성 '스푸트니크'  (1) 2019.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