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해성 '스푸트니크'

clint 2019. 12. 6. 12:08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전쟁 없는 곳으로 이주하고, 누군가는 일자리를 위해 또 다른 나라로 이주한다. 누군가는 동경하는 지식과 문화를 좇아 또 다른 나라를 꿈꾸고 또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의 현장을 향한다. 평범한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꾼다. 네트워크와 자본으로 연결된 세계에서 이러한 동경은 돌고 돌아 끝도 없이 맴돈다. 이 연극은 결국 누구도 어디에건 속해있지 않고 참착하지 못하는, 모두가 부유하고 흔들리는 디아스포라의 풍경을 응시한다삶과 직업의 의미가 별개인 심리상담사, 일 년의 대부분을 출장지에서 보내는 세일즈맨, 동생 닌텐도를 팔아 구명조끼를 산 소녀, 제대하면 대학에 가고 싶은 군인, 난민캠프 주위를 어슬렁대는 개 -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나른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창을 통해 바라보는 지구 반대편에서의 내전은 역시 특별하지 않은 그곳 사람들의 나른한 일상이다 이 연극은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을 연결한다

이 연극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고 중첩되어 인물들이 스치며 만나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이 연극에서의 극장은 이야기를 재현하는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극장 밖 일상과 관객을 끊임없이 연결시킨다

 

 

 

 

 

1957년 소비에트연방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띄우는 일련의 우주개발 계획 이름 스푸트니크스푸트니크 2에 탑승했던 개 라이카에 대한 상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인류에 앞서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생명체인 라이카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라이카가 돌아갈 수 없는 지구를 바라보는 모습은 다른 세계를 동경하며 떠도는 네 명의 인물들과 연결되며 동시에 각자의 삶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과 연결된다. 지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꿈꾼다. 창밖 너머 저쪽에서는 적어도 여기보다는 훨씬 더 나은 삶이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작 발걸음을 옮긴 그곳이 내가 꿈꾸던 모습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나서면 되니까. 저기 저 밖까지 나가면, 지구 밖 우주까지 나가본다면 어떨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언젠가 그런 세상을 마주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말이다. 노력하며 살아가는 도중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속 한 구석에 불안감이 싹튼다. 그런 세계가 진짜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노력만 한다면 때론 누추하고 때론 혹독한 이 일상을 벗어나 내가 꿈꾸는 멋진 세계를 정말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작가의 글 - 박해성

네트워크와 자본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세계에서 평범한 개인들이 어디건 속해 있지 않고 정착하지 못하는, 모두가 부유하고 흔들리는 총체적 디아스포라의 순환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어딘가 더 나은 삶과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모인 대사가 “창밖으로 무엇을 보고 있나요”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업의 시작인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고, 창밖으로 돌아가지 못할 지구를 내려다보는 라이카의 시선이기도 하고, 여기를 벗어나고픈 우리 모두의 시선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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