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우천 '중첩'

clint 2019. 12. 1. 09:54

 

 

 

일상에 지치고 불행한 삶의 무게를 견디다 못한 현대의 한 남자가 권총 자살을 시도한다.

이 작품은 총알이 남자의 머리를 관통하는 찰나의 순간에 시간과 공간,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이 중첩되는 잔상들을 상징과 은유, 이미지와 판타지의 혼재와 양립 등 다양한 조합을 통해 연극만의 매력을 추구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우여곡절이 많다. 이 연극의 주인공 남자는 재수가 '옴 붙었다'. 아들 화장하는 현장에서 와이프와 통화한 후 집에 가보니 아내가 목을 매고 죽어 줄초상을 치러야 했다. 중학교 때 진실하게 만난 누나 또한 이 남자의 욕정으로 인해 목을 매죽는다. 엄혹한 시절에 대학에서 민주화 투쟁을 하던 이 남자는 첫 사랑 연인 때문에 조직의 주범을 불고 살아나지만 군대로 떠밀린다. 거기서도 고문관노릇을 하던 그는 전장에서 뒷걸음치다 생고생을 한다. 일상에 찌들어 출근하던 남자는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은 충동으로 차를 돌려 운전하다가 대형사고로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장면은 급변해 남자는 식인종들이 사는 원시사회에 내동댕이쳐진다. 거기서도 이 남자는 원시인들로부터 종족 번성의 도구가 될 뻔하다가 마녀 같은 할멈을 만나 만사는 때대로 간다는 장황한 훈시를 듣는다. 사내는 가족과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지만 이 연극은 모든 일들이 총알이 뇌리를 스치는 찰나에 일어난 파노라마라는 것을 알고 관객은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과 함께 연극만의 매력에 빠져든다.

 

 

 

 

 

 

'중첩'은 직접 쓰고 연출한 대학로의 중견 이우천이 연극만이 가능한 상상력을 무대에 펼쳐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재미도 있었다. 누가 보아도 현실 같은 환상이, 환상 같은 현실이 작가 특유의 전개 방식대로 얽키고 설킨다. 현대에서 전개되던 연극은 일순 곤두박질 쳐 원시시대로 회귀한다. 왜 갑자기 원시인들이 우르르 나와 소동을 피우는가가 궁금했는데 주인공 남자가 악몽을 꾼 설정임을 나중에 알았다. 피곤하고 스트레스 많을 때 이상한 꿈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그렇게 현실과 상상이 중첩되는 지점에 작가는 주목했다. 그래서 제목이 '중첩'이다. 시간과 공간이, 의식과 무의식이, 현실과 비현실이 포개지면서 작가는 우리 현대사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의 삶을 굵은 선으로 투영시키고 있다. 무거운 주제를 번득이는 상상력과 연극 특유의 메소드로 풀어낸 이우천의 재능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연극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열악한 현실에서 18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경연에 뽑혀 몹신까지 서슴지 않은 연출은 이우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이우천 작 연출의 이 작품은 그처럼 "뭔가 새로움(Something New)"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연극평론 정중헌)

 

 

 

 

도입에 아이의 죽음으로 화장터로 간 주인공인 아빠, 시신이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사진을 들여본다. 집에 있는 엄마는 목욕재개를 하고 아이의 사진을 쓰다듬은 후 아이 아빠에게 전화한다. 아이의 화장이 거의 끝나간다는 아빠의 말에 엄마는 욕실로 들어가 의자를 놓고 목을 매단 후 의자를 발로 찬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 허공에 매달린 아내의 시신을 발견한다.

죽은 아내까지 장례를 치르고 발인을 한 다음 날 주인공은 출근길에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다. 사방에서 경적음이 울린다. 주인공도 경적음을 계속 울리며 운전한다. 그러나 차가 계속 막혀있다. 휴대전화가 계속 울리고 전화를 받는다, 회사 상사 남녀 직원이 계속 전화를 한다. 길이 막혀 차들이 정지된 상태에서 사방에서 들리는 차의 경적 음과 전화벨 소리에 주인공은 차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권총을 꺼내들고 막혀있는 차를 향해 권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자신에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장면이 바뀌면 주인공의 청년시절로 설정된다. 대학 시절의 주인공이다. 최루탄의 매연 속에서 시위대가 노래를 부른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군인들이 학생들을 체포한다. 경찰서의 취조실로 바뀌면 청년시절의 주인공이 야구방망이를 손에 쥔 수사관의 심문에 답하고 있다. 신통한 대답을 못 하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수사관, 시위주동자의 행방을 밝히라며 주동자가 사기전과자이고 혼인빙자 간음죄를 저지른 전과자라며 상대 여자의 사진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놀란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때문이다. 주인공은 시위주동자의 위치를 경찰에게 알려준다.

 장면전환 되면 주인공과 사진 속의 여인의 과거회상장면이 시작된다. 여인이 중3학년 주인공이 중1학년이던 학창시절이 전개된다.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피해 들어간 장소에서 젖은 내복과 그 사이로 보이는 상급여학생의 가슴이 보이고 주인공은 가슴을 보듬으려 손을 내민다. 그때 비가 그쳤다”, 라고 하는 여학생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여학생에게 군대를 가기로 했다고 알린다.

 주인공의 군대생활에서 주인공은 고문관소리를 듣는다. 군사분계선 부근이라 북의 방송이 들려온다. 경고 총성도 들려온다. 그가 배를 탔는지 배를 멈추고 신원을 밝히라는 북의 경고음이 들려온다. 주인공은 경고음이 들려오는 방향으로 총을 발사한다. 그때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이 지나간다. 주인공은 놀라며 여보 하고 부른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아내와의 과거로 회귀한다. 주인공의 아내와 또 한명의 여자, 바로 주인공과 정분을 통한 여자다. 아내가 이야기 한다. “일을 핑계로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 “아이가 알면 어쩌려고?” “당신 피를 토하며 괴로워할 거야

 그때 화장장의 인부가 유골을 함에 담아준다. 주인공은 다시 과거를 회상한다. 자취방에서 재봉 일을 하는 주인공보다 나이가 위인 여자,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누나 같은 여인의 재봉 일을 곁에서 지켜보며 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밤이 되고 주인공은 누나 옆으로 가서 누나를 범하려 한다. 강제로 옷을 벗기려든다. 누나는 스스로 옷을 벗고 주인공을 받아들인다. 시간이 흐르고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나니 목을 맨 누나의 시신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가가 누나의 발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주인공. 그러면서 장면은 주인공의 대학시절로 되돌아간다. 바로 그 장면에서 경찰서 취조실에서 본 사진의 여학생인 미진이 등장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는 과정과 몸과 마음을 밀착시키기 시작하면 시위대의 구호가 들려온다. “군부독재 물러나라~” “독재정권 박살내자!” 미진은 일어나 시위대에 합류한다. 주인공은 제자리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

 

장면이 바뀌면 아이를 업은 아내가 다시 등장한다. 주인공은 아내를 외면한다.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그 여자를 따라간다. 여자는 하이힐 대신 핸드백에서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다가간다. “섹스를 원한다며?”, 그런 말과 함께 여자는 자신의 스커트 안으로 손을 넣고 붉은 끈을 잡아당긴다. 끈은 길게 늘어난다. 여자는 춤을 춘다. 그러면서 여자는 피의 축제운운하며 사라져간다.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옆에 아내가 아이를 업은 채 서있다. 아내는 나는 자궁이 없어, 그리고 젖가슴도 타버렸어한다. 주인공이 못 들은 체하고 사라져버리자 아내는 통곡한다.

 

장면전환이 되면 주인공의 군복무시절로 되돌아가고, 반야심경의 소리와 함께 미진이 여승이 되어 등장한다.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고 교도소 신세를 지다가 풀려나 비구니가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인공이 시위주동자인 미진의 연인을 고발하고, 그 주동자는 고문을 당해 불귀의 객이 된 것을 듣게 된다. 미진은 주인공에게 자신이 사랑하던 남성을 밀고해 죽였노라고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권총을 뽑아 미진의 머리를 내려친다. 미진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는 주인공, 그러나 그의 군복은 피범벅이다. 차에 올라타는 주인공, 차를 운전하면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휴대전화를 차 밖으로 던져버리는 주인공, 언덕을 넘으며 차 없는 고개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주인공은 차에서 일어선다. 손을 활짝 벌리고 심호흡을 한다. 그때 다른 차의 경적 음이 들리며 충돌하는 소리가 크게 난다.

 

주인공이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나면 주위에 원시인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장발, 생식기만 가린 옷, 손에 든 돌도끼, 까만 피부와 하얀 이, 주인공이 알아들을 수 없는 자신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모습과 함께 주인공을 묶어 긴 막대에 매달아 들고 간다. 촌장이 등장한다. 원시인들은 주인공의 차에 부딪혀 죽어가는 동료를 촌장에게 보인다. 촌장은 주인공에게 가까이 와서 어디서 왔는가? 이름은? 하고 뭇는다. 주인공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원시인들이 다가와 돌도끼를 보인다. 주인공은 돌도끼라고 이야기한다. 원시인들은 돌도끼라는 말에 파안대소를 하며 주인공을 동족이라고 좋아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시신을 한 조각 먹으라고 내민다. 주인공이 놀라 뒤로 넘어지자 원시인들은 돌도끼로 주인공을 겨누며 다가든다. 그 때 모자달린 긴 가운을 입은 노파가 등장한다. 원시인들이 모두 물러난다. 노파는 주인공을 보고는 원시인들에게 함께 죽일 여자를 데려오라고 이른다. 원시인들이 백색 옷을 입은 여자를 데려온다. 바로 주인공의 죽은 아내다. 주인공과 아내를 옆에 두고 원시인들은 남은 시신을 뜯어먹는다. 주인공은 원시인의 돌도끼를 집어 들고 원시인을 하나하나 찍기 시작한다. 원시인들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다. 주인공은 도망치기 시작한다. 원시인들의 뒤를 쫓는다. 그런데 주인공의 옆으로 어린 학창시절 폭우를 피하려고 가방을 머리에 들어 올리고 뛰던 상급학년 여학생과 주인공이 뛰어가던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경악한다. 그 때 긴 가운을 입은 노파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노파에게 여기가 도대체 어느 곳인지 물어본다. 그러자 노파는 주인공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말해야 알려주겠다고 한다. 주인공은 미시령 고개를 넘어오다가 과속으로 달리며 핸들을 놓고 일어섰던 순간을 이야기 한다. 그러자 노파는 인간의 삶은 끝없는 반복임을 천명하며 죽음 또한 반복임을 알린다. 생성과 소멸이 반복하다보면 중첩(重疊)될 수도 있음을 알리고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서 퇴장한다. 원시인들이 다시 쫓아오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아내의 손을 잡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절벽에 다다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주인공은 절벽위에 서서 아내를 포옹한다. 그리고 절벽 아래로 아내와 함께 뛰어내린다.

 

장면이 바뀌면 주인공과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나선다. 공원에 자리를 깔고 음식과 와인을 꺼내놓고 둘러앉는다. 아내와 아이가 즐겁게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일어서서 몇 걸음 물러서며 권총을 꺼내든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댄다. 총소리가 들리면서 암전된 후 다시 조명 들어오면 서울도심의 출근길, 길바닥에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주인공,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연극은 끝이 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지현 '어떤 접경지대에서는'  (1) 2019.12.02
극단 신세계 공동창작 '공주들'  (1) 2019.12.01
성준기 '간이역'  (1) 2019.11.29
성준기 '도처에 춘풍'  (1) 2019.11.29
성준기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서'  (1) 2019.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