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밤중. 이름 모를 간이역에 기차가 선다. 먼 곳에 있는 연인을 찾아 나선 한 청년이 얼떨결에 간이역에 내려선다. 텅 빈 간이역. 뿌연 조명 아래 드러난 간이역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낡은 램프를 쳐든 노역부가 다가온다. 청년은 이 낯선 간이역이 어딘지 묻는다. 묘한 모습의 역부는 이 청년의 어리둥절한 모습에 킬킬거리며 답한다. 이 역은 한때 번성했던 작은 도시의 간이역이었다. 허나 전쟁 통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당국은 이 도시의 철로를 폐쇄시켜 버린다. 그러나 가끔 눈보라가 몰아치거나 밤안개가 짙은 밤중에 길 잃은 기차가 예전에 있던 이 녹슨 철로를 따라 이 간이역으로 들어 왔다가 손님을 내리고 곧장 달리다가 저만큼 눈앞의 바다 끝 벼랑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때 청년이 타고 왔던 그 밤기차가 천길 벼랑 아래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놀란 청년에게 노인은 얘기를 계속한다. 이렇게 눈 먼 기차를 타고 이 곳에 내린 사람들은 자신이 탈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저 뒤 여인숙으로 가서 1년이고 2년이고 기차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허나, 십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가도 자신이 탈 기차는 오지를 않고, 그들은 서서히 그리움을 달래며 저렇게 이 깊은 산 속, 이름 모를 도시의 소시민이 되어 주저앉게 된다는 것이다. 청년은 강하게 이를 부정한다. 그는 어떡하든 이 낯선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한다. 허나, 오던 길엔 강물 위에 부서진 철로가 가로막고 있고, 기차가 달려가던 도시의 앞쪽엔 짙은 안개 속에 바다 속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다. 용케 그 위험을 벗어나더라도 이 미로 같은 도시의 주변을 돌고 돌다가 끝내는 지쳐서 이 도시로 도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청년 또한 절망 끝에 이 낯선 도시의 소시민으로 주저앉게 되는데…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소중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이룰 기회는 좀체 다가오지 않는다. 용케 다가오는 자신의 기차를 올라타는 사람은 극히 소수. 대부분의 사람은 가슴 속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이 탈 기차를 기다리며 청춘을 보내고 중년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탈 기차의 기적소리에 눈시울을 적시며 일생을 보내다가 끝내는 자신의 기차에 몸을 싣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간의 욕구, 기다림, 그리움을 이 작은 간이역을 통해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글 (성준기)
디지털 문화가 발달하고, 다 채널 다 미디어 시대에 사는 우리로선 구태여 극장을 찾지 않더라도 TV, 라디오, 영화, 신문, 광고 특히 컴퓨터의 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해 숱한 드라마적인 영상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까운 시간을 쪼개고 비싼 입장료를 내면서까지 어둡고 좁은 소극장을 찾지 않으려 하고 있다. 연극이 죽어가고 있다. 이건 우리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연극 또한 관객의 기호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 연극은 무대장치 하나와 몇몇의 등장인물들 만으로는 관객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미술, 음악, 무용, 무대 공학 등 다양한 인접 예술을 끌어들여 스펙타클한 무대로 그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연극에서의 희곡의 존재도 많이 약화되어 버렸다. 희곡이 곧 연극이라는 등식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슬프게도 극작가가 쓴 희곡은 연출가라는 또 다른 창작자의 손에 의해 재창조가 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피를 말리며 쓴 자신의 작품이 가위질 당하는 것을 보며 통한의 모욕감을 감내해야 한다. 이를 마다하면 스스로 제작비를 대고 자신의 희곡을 자신이 연출하여 무대에 올리는 길 박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 대학로에선 연출가 겸 작가를 겸업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더더욱 슬픈 일은 연극의 공연성이 강조되면서 희곡의 문학성은 공허한 소리가 되어 버렸다. 이제 희곡작가는 문학이라기보다는 공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이미지 제공자로 전락해 버렸다. 슬프다. 이번에 나는 오랜 전통을 지닌 이 명동의 예술극장에서 내 희곡을 무대에 올려주겠다는 고마운 제안을 받고 짬짬이 연습장을 찾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연출가는 내가 쓴 희곡을 거의 손대지 않고 작가의 의도대로 연극을 만드는 걸 보면서 참으로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쓴 이 무대가 관객 여러분 앞에 인생이라는 커다란 명제의 한 단면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작가의 재질이 뛰어나지 못한 탓에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 되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몹시도 송구스럽다. 그리고 고맙다. 그렇다. 관객이 연극을 외면하는 이 시대에,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 여러분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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