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성준기 '이 풍진 세상에 태어나서'

clint 2019. 11. 29. 12:01

 

 

2000년(시대문학 신년호)에 발표한 작품임.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슬픈 이야기이다.

독불장군 같았던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모인 엄마와 아들, 딸이 그간 그들이 느낀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돌이켜보고 다시 뭉쳐보려 하나 그들이 느꼈고 살아온 실패한 인생을 뛰어넘지 못한 채 끝을 맺는다. 작품에 등장하진 않지만 아버지의 강압과 폭행에 집을 나간 아들과 딸, 교회에만 전념하는 엄마, 대학교를 중퇴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아들, 고급 요정에 나가 돈을 버는 딸 등 치유하기 어려운 가족들의 불협화음이 얽혀있다.

 

성준기의 희곡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첫 감정상태는 경악 그 자체였다. 그가 그리는 세상의 끔찍함에 나는 경악했다. 무엇보다도 더 끔찍했던 것은, 그가 그리는 세상이 내가 모르는 어떤 특별난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별다르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있었다. 나는 전율했고, 잠을 설쳤으며, 악몽을 꾸었다. 나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의 마음은 상처를 입었고 방황했고 무서움에 떨었다. 나는 거의 내 자존감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성준기의 인물들은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지도 않으며, 착취할 뿐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한 치의 희망도 용납하지 않는다. 오직 이기주의적이며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며, 당당하며,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들의 삶이다. 성준기 작품의 끔찍스런 미학은 바로 그 명제에 있다. (극작가 최원종의 글)

 

 

 

 

작가의 글(위 평에 대한)

내 작품들이 이렇게 추악하고 외설적이며 동물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니 나는 당연히 주목 받는 작가가 되지 못했다. 나는 앞으로도 주목 받는 작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그 또한 슬프다. 그러나 나는 내일도 내가 쓰고 싶은 소재, 내 취향의, 내가 쓰고 싶은 글들만 써나갈 것이다. 희곡 독자는 어차피 제한돼 있다. 그러니 독자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그냥 내 쓰고 싶은 대로 쓴다. 그게 재미있고 한 없이 좋다. 그래서 푸짐하게 쓴다. 많이 쓴다. 배운 재주가 그것밖에 없으니 그냥 죽자 사자 글만 쓴다. 때로는 그런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근데도 그게 내 타고난 사주팔자니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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