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하땅세>는 배우이자 시인인 낸시 해스티(Nancy Hasty)의 <연출가>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연극연습실 옆에 있는 관리실 경비원에게 희곡작가 정제헌이 찾아온다. 초라한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그가 실력 있는 연출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작품 연출을 맡기면서 극이 시작된다. 배우들을 극한상황으로 몰아넣으면서 연기지도를 하는 연출가 덕분에 배우의 연기가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가 실제인지, 연기인지 혼동하게 된다. 관객들 역시 현실과 연극의 경계가 모호하게 펼쳐지는 무대와 배우를 보면서 충격을 받게 된다.

연극 연습실 옆에 붙은 관리실에 희곡작가 정제헌이 찾아온다. 그녀는 초라한 관리인이 자신이 연극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실력있는 연출가였다는 걸 기억해낸다. 그녀는 수위에게 존경을 표하고 자신의 작품을 연출해 달라고 부탁한다. 수위는 자기가 맡으면 모두가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거절한다. 결국 간곡한 부탁에 그 수위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작품을 만들겠다"고 다짐받고 연습에 참여한다. 여러 해 작업을 중단하고 있는 연출가가 다시 연극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배우수업과정에서 그로토프스키의 연출방법을 택하기도 하며, 그로토프스키식의 배우수련으로 연기술에서의 본능과 본질추구, 작중인물과의 영적교감, 겉치레인 분장, 의상, 장치보다는 배우 개개인의 가식 없는 표현과 자기최면에 이르기까지, 연극 <하땅세>에서는 연출자가 독특하고 독자적이고 권위적인 방법으로 배우들을 지도해 가며, 때로는 악마처럼, 때로는 성자처럼 가르치는가 하면 작품을 써서 연출을 의뢰한 여류작가에게까지, 마치 배우에게 대하듯 혹독한 방법으로 다그치며, 작가까지도 연출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절대 복종토록 만드는 등, 관객을 일순의 유예조차 주지 않고, 경외감과 함께 극 속으로 몰입시킨다. 결국 대단원에서 연출가의 혹독하고 광적이고 공포스러운 그로토프스키 그 이상의 연출방법에 견디다 못해, 배우들은 물론 작가까지 연극을 포기하고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번안의 글 - 윤조병
이 연극은 희곡이 공연으로 가는 과정에서 작가와 연출가와 배우가 갈등하고 충돌하는 연극 만들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작품에 해석에 대한 작가와 연출의 갈등과 충돌, 연기의 정신과 실제에 대한 연출과 연기자의 갈등과 충돌 그리고 자존심을 감싸고 있는 원형질의 갈등과 충돌이다. 수십 년 동안 작품을 쓰고 연극을 만들면서 겪어온 일인데, 이 희곡에서 원형질에서 예술에 이르는 갈등과 충돌의 한 신선한 결과를 발견했다. 매우 흥미롭고, 신선해서 흥분하면서 열심히 번안했다. 희곡창작은 현장답사를 제외하면 몇 달 혹은 몇 년을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작업이라 육신이 통증에 시달린다.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쉽게 몸을 푸는 동작을 만들었다. 소위 하땅세 스트레칭이다. 일주일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육체 스트레칭으로 활용하다가 <하땅세>로 이름 지어 창작 정신으로 활용해왔다. 온몸으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살피고, 세상을 돌아본다는 다분히 사색 덕목이다. 이 덕목이 수십 년 동안 나의 몸과 정신을 지탱해주었다. 번안 과정과 연습 과정을 보면서 상상으로 자유롭고, 낯설어 신선하고, 강한 충돌로 무대에 에너지와 쇼크가 넘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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