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극은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로부터 이야기의 큰 틀을 빌렸다. 우리 모두가 상처받는 인간이라는 전제 아래 시대, 배경, 인물 관계 등이 적극적으로 재구성됐다. 지난 4월 '여기, 바냐'라는 제목으로 한예종 연극원에서 전문사 졸업 작품으로 공연됐다. 당시 교내외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어 대학로까지 진출했다.
인문사회과학 계간지 '시대비평'의 김남건 팀장은 자신이 마음에 둔 팽지인 디자이너에게 마음을 알아달라고 위와 같이 간절히 외친다. 그러나 그 간절함은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방적 강요에 그칠 뿐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감에도 서로에게 온전히 기댈 수 없는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극 속 인물들은 '시대비평'을 배경으로 서로 얽히고 설켜있지만 저마다 동떨어진 섬에 있다. 김 팀장은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 잡지 '시대비평'에 마지막 남은 자신의 이상과 자존심을 건 인물이다. 김 팀장의 친구로 '시대비평' 사무실을 자주 찾는 지방강사 겸 과학철학자 박용우는 어려운 '시대비평'에서 꿋꿋하게 펜을 세우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오직 신념 하나로. 여기 김 팀장만 보더라도 말이죠. 이 친구 똥고집이야 다들 아시잖아요."
이런 김 팀장에게 광고계에서 일하다 새롭게 등장한 편집장 서상원은 위협 인물이다. 편집장은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시대비평'과 소속 직원들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이 잡지를 돈이 될 만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살기 위해 편집장은 "모든 면에서 고민한 결과" 사업을 추진하지만 눌어붙은 희망으로 '시대비평'을 붙잡고 있는 김 팀장에게 외면 받는다. 추진력 있는 서 편집장은 겉으로는 모든 걸 갖춘 듯 보인다. 편집장 직함을 달고 젊고 아름다운 애인인 맹 디자이너와 내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도 누구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서 편집장은 맹 디자이너에게 애처롭게 말한다. "여기 같이 있으면 좋겠어,…. 넌 안 갈 거지?"
서 편집장과 함께 '시대비평'에 등장한 맹 디자이너는 김 팀장은 물론 박용우를 위태롭게 한다. 김 팀장은 정 디자이너에게 계속해서 '예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며 집착한다. 박용우는 "내 인생은 황폐해요. 늘 구원을 찾아요."라며 맹 디자이너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김 팀장은 혼자서만 간절함에 몸서리칠 뿐이고 박용우는 구원을 찾는 데 실패하고 만다. 맹 디자이너 주위에는 이러한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지만 누구도 그녀를 진정 이해하거나 배려하지 않는다. 결국 폐간이 결정되고... 언젠간 드넓은 아프리카로 갈 거란 생각으로 책상머리 맡에 아프리카 사진을 붙여놓고, 텁텁한 인생을 알싸한 박하사탕 하나로 버텼던 남건이 믿었던, 믿고 싶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던 날... 관객은 뭘 느끼게 될까?

체홉의 인물들이 그러하듯 무대의 인물들은 모두 뭔가를 갈구하고, 고민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대화는 오간다기 보다 공중으로 맴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고 슬픈 인간 군상들이 외곽의 포창마차에서 쓸쓸하게 소주와 맥주를 마주고 있을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렇게 좌표를 잃은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공중을 떠돌다 관객의 가슴 안에서 부유하기 시작한다. 드라마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그들의 내밀한 속마음에 스며드는 감촉이 좋다. ‘우리는 확률 위에 서 있는 사람’이란 대사처럼 극장의 문을 열고 나간 뒤, 다시 공허해지고 외로워지고 힘들어질 확률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 슬픔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주게 된다. ‘오늘, 여기의 바냐들’이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계속 숨 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글
체홉은 자신의 희곡을 희극이라 칭했다 합니다. 사실 아직도 그 말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듭니다. 다만 우리 살아감이 변하지 않고 반복될 때 서글퍼지고,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았을 때 문득 우스워지는, 그리고 다시금 삶이 반복될 때 어쩔 수 없이 서글퍼지는 희극과 비극의 끊임없는 교차라고 생각할 때, 간신히 알 법도 합니다.
그 텍스트 위에 지금, 여기의 문장들을 슬몃 얹었습니다. 그 문장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 시대를 살아내며 어디로 갈지 모르고 비틀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닮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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