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왕런제 '선비와 과부'

clint 2019. 10. 14. 12:36

 

 

 

 

 

 

 

왕런제는 1987<수절하는 과부의 노래>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원희의 부활과 중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데 이어서, 1993년 또 다시 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선비와 과부를 발표한다. 두 작품은 모두 선비와 과부 사이에 발생하는 감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앞의 작품 수절하는 과부의 노래에서는 과부와 선비 간에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고백과 거절을 교차하며 전통적 관습이 수절하는 과부에게 가히는 고통과 과부의 대처법을 다소 충격적인 행동과 함께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과부가 선비에게 먼저 애정을 고백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그런 면에서 대단히 현대적인 애정 표현을 선보인다. 선비와 과부에서는 분위기가 다소 명랑하고 유쾌해진다. 이 작품의 원제는 <선비 동씨와 과부 이씨>이다. 앞의 작품과 달리 선비 동씨는 다분히 코믹 캐릭터로 바뀌었고, 과부 이씨도 앞의 작품처럼 비관적이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말이 비극적이지 않고 선비와 과부가 혼인하는 해피엔딩이며 극중 정서는 시종일관 대단히 유쾌하다.

 

 

 

 

<선비와 과부>는 원래 제목을 보자면 <동 선생과 (과부)이씨> 정도로 할 수 있는데, 내용 면에서는 정말로 팔구백 년 전 남송 시절에 공연했던 작품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좋은 의미에서 촌스럽고, 재미있다. 무대는 타이완을 마주보는 취안저우 지역. 중국에서 썩 높지는 않은 관직으로 원외員外라고 있었나보다. 이 관직을 하고 있던 팽씨 성을 가진 인물이 있어 팽원외라고 불렀다. 이이가 나이가 들어 귀밑머리 푼 조강지처가 숟가락을 놓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새장가를 들었는데 상대가 젊디젊은 이씨 부인이었다. 팽 선생 본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를, 그건 두 여인과의 사이에 아무 씨도 퍼뜨리지 못했다는 것. 자손만 없는 것도 아니고 부모는 벌써 장사를 지냈고, 형제자매도 없어서 세상에 피붙이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팽 선생도 드디어 염라대왕의 명부에 정한 날짜가 도래해버렸다. 그래 드디어 저승에서 사자가 둘이나 도착해 소매를 잡고 올라가자고 조르는 터. 팽 선생 생각하기를, 자기가 저승 가는 건 나이 든 필멸의 존재라 당연하지만 새파란 이씨 혼자 두고 명을 다하면 틀림없이 이씨가 개가할 것이라는 걱정이 대단한 거다. 그래 다 죽어가는 팽 선생의 머리에 떠오른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 하나 있었으니 그 인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자, 동네 서당의 훈장이자, 천명, 대인, 성인의 말씀을 경외하는 것도 모자라 여인마저도 경외(공경하여 두려워)하여 사외四畏라고 칭하는 동 선생, 이름 하여 동사외董四畏였다. 그래 저승사자에게 은 백 냥을 뇌물로 주고 십 분의 시간을 벌어 동사외를 불러 당부하기를, 생전에 자네가 내게 빈 은 열 냥, 이자까지 합해서 스무 냥을 없는 것으로 하고, 대신 자기가 죽으면 과부 신세를 면치 못할 이씨가 외간남자와 연애를 하는지 잘 감시하고, 만일 그럴 경우 꼭 둘 사이를 파투를 내야하며, 조사 결과를 매달 한 번씩 자기 묘에 와서 보고를 해달라고 한 다음에야 영혼이 몸을 떠난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의 동 훈장이 이씨가 나설 때마다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는데, 아이고,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의 현상이 벌어지는데, 그게 무엇인가 하면, 견물생심. 눈으로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뜻. 노총각 동 훈장은 자기도 모르는 새 이씨 부인에 대해 은근한 집착이 생기고, 이씨 부인 역시 동 훈장의 글 읽는 소리만 듣고도 호감과 동경의 경지에 다가서니 어찌 인간의 힘으로 막으리오. 근데 이게 사대부 동씨 집안에선 가볍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이미 구천의 귀신이 됐다한들 어찌 한 순간이라도 매끈매끈하고 포동포동한 이씨의 살결을 잊을 수 있을까, 팽 원외 두 양반들의 뜻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나, 결국 두 사람은 맺어지게 된다.

 

 

 

 

극작가 왕런제(1942년 생)가 푸젠성 취안저우 출신이며 그곳이 비록 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적으로 뛰어나고 미적 감화력이 충만한 이원희梨園戱라는 지방 극종이 있다고 하며, 작중 각주를 통해 혼인 장면을 들어 무대가 이원희가 있는 취안저우의 풍습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이 작품도 상하이 아래서 홍콩까지를 중심으로 하는 천극川劇, 월극越劇, 곤극崑劇 등 남송 시절 남희南戱의 전통을 이은 창작 희곡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극작가 왕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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